국립중앙박물관: 계속 옮겨 다닌 박물관
1908년 궁궐 안에서 시작해 총독부가 운영했고, 폭격으로 수천 점을 잃었으며, 2만여 점을 부산으로 피난시켰고, 주소가 여섯 번 바뀌었습니다. 이 박물관의 이력 자체가 한국 근현대사입니다.
언어

한국에서 박물관에 하루를 쓸 수 있다면 이곳입니다. 상설관을 순서대로 걸으면 선사·삼국·통일신라·고려·조선·근대가 몸으로 지나갈 수 있는 방의 연속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이 글이 다루려는 두 번째 이유가 따로 있습니다. 이 박물관 자신의 이력이 한국 근현대사입니다. 궁궐 두 곳에 들어앉았고, 총독부가 운영했고, 폭격을 맞았고, 부산으로 피난했고, 여섯 번 옮겼습니다. 나라가 바뀔 때마다 주소가 바뀌었습니다.
관람 시간·전시관·교통 같은 실제 정보는 박물관의 장소 페이지에 있습니다. 이 글은 이 소장품이 어디를 거쳐 왔고, 그것이 지금 보는 것과 무슨 상관인지를 다룹니다.
한눈에 보기
궁궐 안에서 시작했다
1908년 9월 창경궁 내의 이왕가박물관에서 출발했습니다.
1915년, 총독부박물관
1910년 이후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내에 박물관 건물을 신축해 1915년 12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2만여 점을 부산으로
한국전쟁 중 중공군 개입으로 전황이 불리해지자 중요 문화재를 부산으로 긴급 피난시켰습니다.
2005년부터 용산
경복궁·부산·남산·덕수궁·다시 경복궁을 거친 뒤의 가장 최근 주소입니다.
궁궐의 박물관, 그다음 식민지의 박물관
이 기관은 나라가 주권을 잃기 전에 시작해서, 손이 바뀝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908년 9월에 발족한 창경궁 내의 이왕가박물관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왕가박물관은 왕실의 재정적 뒷받침으로 미술품을 수집했습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경복궁 내에 박물관 건물을 신축하고 1915년 12월 총독부박물관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총독부박물관에서는 일부 구입품 외에 고적 조사를 통해 습득한 매장유산, 그리고 사찰의 기탁품 등을 수집·전시했습니다.
경복궁과 같이 읽으면 같은 시기가 철거로 나타납니다. 궁궐이 헐리는 동안 그 안에 박물관이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통치의 전체 그림은 일제강점기에 있습니다.
분관망도 같은 방식으로 자랐습니다. 1915년부터 경주고적보존회가 신라시대 유물을 전시해 오던 경주의 전시관이 1926년 총독부박물관의 경주분관으로 편입되었고, 부여와 공주의 유물전시관도 1939년과 1940년에 각각 분관이 되었습니다. 광복 전까지 분관은 세 곳이었습니다.
여행에도 쓸모 있는 사실입니다. 경주는 신라이고 부여와 공주는 백제입니다. 분관 지도가 곧 한반도의 고고학이고, 그 지역의 유물이 지방 박물관과 이곳에 나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1945년, 그리고 전쟁
일본인들에 의해서 독점되었던 박물관은 1945년 광복이 되면서 같은 해 9월에 인수받아 국립박물관으로 개편되었고, 3개의 지방 분관도 국립박물관 분관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광복 자체는 광복과 현대 한국에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이 박물관을 거의 끝낼 뻔했습니다.
북한에 의한 문화유산의 북송은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물이 보관된 경복궁 전각이 일부 폭격을 받아 수천 점에 이르는 유물이 소실되었습니다.
9·28 서울 수복 이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황이 다시 불리해지자 서둘러 유물 대피에 착수하여, 중요 문화재 2만여 점을 부산으로 긴급 피난시켰으며 그곳에 임시 사무실을 설치했습니다.
전시관을 걸으며 들고 다닐 만한 사실입니다. 지금 눈앞의 유물 상당수가 1950년대의 한때를 부산의 궤짝 안에서 보냈습니다. 그 도시가 전시의 피난처였던 사정 때문에 임시수도기념관이 거기 있습니다.
주소 여섯 개
서울로 돌아온 것이 이사의 끝은 아니었습니다.
서울 환도와 함께 남산에 있던 민족박물관 자리에 임시 본부를 설치했다가, 다시 덕수궁 석조전을 수리하고 이전함으로써 한동안 마비되었던 기능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석조전은 덕수궁 권역에 있는 서양식 석조 건물입니다.
1969년에는 덕수궁미술관이 국립박물관에 통합되어 두 개의 전시 시설이 일원화되면서 대폭적인 소장품 확충이 이루어졌습니다.
1972년 8월에는 경복궁 내에 현대식 설비를 갖춘 새 건물을 신축해 이전하면서 명칭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고쳤습니다.
그리고 2005년에 용산으로 이전해 지금에 이릅니다.
주소를 한 줄로 늘어놓으면 한 세기가 됩니다. 제국의 궁궐, 식민지의 궁궐, 전시의 피난처, 서양식 석조 건물, 다시 궁궐, 그리고 마침내 제 땅에 지은 박물관입니다.
한국사 입문으로 쓰는 법
전시 순서가 이 가이드의 순서와 같아서, 역사를 보러 온 여행의 첫날로 가장 효율적입니다.
- 선사와 고대 — 고조선과 삼국시대가 다루는 시기입니다.
- 통일신라 — 남은 건축이 대부분 경주에 있는 시기이고, 통일신라와 불교에서 다룹니다.
- 고려 — 건축이 거의 남지 않은 왕조라서 오히려 박물관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고려를 보세요.
- 조선 이후 — 서울의 궁궐에서 아직 걸을 수 있는 왕조이고, 조선 개관에 정리돼 있습니다.
전체 흐름은 한국사 개관 한 편에 있습니다.
마지막 날 말고 첫날에 가세요. 이 가이드에 나오는 역사 명소는 거의 다 유물이 빠져나간 자리입니다. 궁궐은 비었고, 절터는 주춧돌만 남았고, 무덤은 발굴됐습니다. 유물을 먼저 보고 나면 그 빈자리가 더는 비어 보이지 않습니다. 박물관은 그 폐허의 나머지 절반입니다.
같이 보면 좋은 곳
자주 묻는 질문
이 박물관은 언제 시작됐나요?
1908년 9월 창경궁 안에 발족한 이왕가박물관에서 출발했습니다. 경복궁 안의 총독부박물관은 1915년 12월에 문을 열었고, 1945년 9월에 인수되어 국립박물관으로 개편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때 소장품이 피해를 입었나요?
그렇습니다. 북송은 모면했지만 유물이 보관된 경복궁 전각이 일부 폭격을 받아 수천 점이 소실되었습니다. 이후 중공군 개입으로 중요 문화재 2만여 점을 부산으로 긴급 피난시켰습니다.
왜 이렇게 여러 번 옮겼나요?
주소가 나라의 역사를 따라갑니다. 1908년 창경궁, 1915년 경복궁, 전쟁 중 부산, 남산의 임시 본부, 덕수궁 석조전, 1972년 8월 경복궁 내 신축과 지금 이름, 그리고 2005년 용산입니다.
여기와 지방 박물관 중 어디를 가야 하나요?
여정이 허락하면 둘 다입니다. 경주·부여·공주의 전시관이 1926년과 1939년, 1940년에 분관으로 편입되었고 신라와 백제 유물은 그 지역과 서울에 나뉘어 있습니다.
여행의 어느 시점에 가는 게 좋나요?
이릅니다. 한국의 역사 명소는 대부분 유물이 박물관으로 옮겨진 자리라서, 유물을 먼저 보면 그 뒤의 유적이 훨씬 잘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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