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한국사에 처음 등장한 나라
박물관 첫 전시실에서 만나는 고조선. 단군 건국 연대가 왜 사료마다 다르게 읽히는지, 서기전 108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홍익인간'이 왜 지금도 대한민국 교육법에 남아 있는지.
언어

국립중앙박물관을 순서대로 걸으면 가장 먼저 만나는 이름이 고조선입니다. 한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국가이고, 그래서 안내판은 대개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이 세웠다"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 문장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부터 정리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한국의 학술 백과사전은 그 연대를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후대의 역사 인식으로 다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그 구분을 그대로 지키면서, 사료로 확인되는 부분과 상징으로 남은 부분을 나누어 설명합니다.
한눈에 보기
한국사 최초의 국가
고조선은 한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국가입니다.
'고조선'은 후대의 이름
처음 사서에는 그냥 '조선'입니다. 고조선이라는 말은 『삼국유사』가 위만조선과 구분하려고 처음 썼습니다.
서기전 108년
한이 위만조선을 멸하고 그 중심부에 낙랑군 조선현을 설치했습니다.
홍익인간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단군신화의 건국이념이면서, 대한민국 교육법이 정한 교육의 기본 이념이기도 합니다.
이름부터 — '고조선'은 그 나라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이 나라가 처음 사서에 등장할 때의 이름은 그냥 '조선(朝鮮)'이었습니다. '고조선'이라는 명칭은 『삼국유사』에서 처음 사용했고, 그것은 뒤에 등장하는 위만조선과 구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고조선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입니다. 조선 왕조와 구분되는 '옛 조선'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전시실에서 '조선'이라는 글자를 보면 두 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 왕조의 조선과 고조선의 조선은 2천 년쯤 떨어진 다른 나라입니다.
건국 연대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삼국유사』는 고조선의 건국 기년을 서기전 2300년대로 규정했습니다.
백과사전은 이 연대를 평가할 때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그 기년은 우리 선인들이 고조선을 어떻게 인식했는가 하는 각 시기의 역사의식을 반영한다는 면에서 사학사적 의의는 크지만, 고조선사 자체에는 실제적인 의미가 없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유도 함께 제시됩니다. 한반도와 만주 일원에서 농경과 금속기가 가장 빨리 보급된 요서·요동 지역에서도 그 시기가 서기전 천수백 년을 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행자에게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서기전 2333년이라는 숫자는 한국 문화에서 실재하는 상징이고, 개천절이라는 공휴일도 여기에서 나옵니다. 다만 그것은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건국 연대와는 다른 층위의 이야기입니다. 두 가지를 같은 것으로 소개하는 안내문을 만나면 이 문단을 떠올리면 됩니다.
사료로 확인되는 고조선
문헌에서 조선이 뚜렷하게 잡히는 것은 서기전 4세기 무렵입니다.
『사기』 소진전에는 소진이 연나라 문후(서기전 361∼서기전 333)에게 "연의 동방에는 조선 요동이 있고"라고 말한 대목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서기전 4세기 중반에는 조선이 연의 변경에서 멀지 않은 주요 세력으로 북중국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이 후퇴의 기록입니다. 『위략』은 조선이 연과 각축을 벌이다가 연 소왕(서기전 331∼279) 때 진개의 침공으로 서쪽 영토 '2,000리'를 상실했다고 전합니다. '2,000리'라는 수치 자체는 논란이 있지만, 『사기』 조선전에도 영토를 잃었다는 기록이 있어 고조선은 이 무렵 서쪽 땅을 잃고 연과 청천강을 경계로 마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끝이 옵니다. 서기전 108년, 한이 위만조선을 멸하고 그 중심부에 낙랑군 조선현을 설치했습니다.
고조선은 어디에 있었나 — 아직 정해지지 않은 문제
전시실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이 위치입니다. 정직한 답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백과사전은 고조선 중심지의 위치 자체가 분명하지 않고, 그래서 그동안의 고조선사 연구가 주로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다만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가 평양 지역이었으므로 위만조선의 왕검성과 그 앞 시기 고조선의 수도도 평양이었을 것으로 보되, 중심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평양 일대였던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1993년 평양에서 '단군릉'이 발굴되었다는 발표가 있었고, 인골 연대측정 결과 그 기년이 서기전 3011년이라고 주장되었습니다. 백과사전은 이에 대해 그 무덤이 모줄임고임 천장의 석실무덤이고 출토된 금동관도 삼국시대의 것이어서, 무덤의 주인공은 고구려 때 사람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싣고 있습니다. 확정된 사실로 소개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행자가 고조선을 만나는 곳, 그리고 남아 있는 한 마디
고조선은 눈으로 볼 건물이 남아 있지 않은 시대입니다. 청동기와 무덤에서 나온 유물로 만나게 되고, 서울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선사·고대관이 그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홍익인간'입니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고조선의 건국이념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 교육법이 정한 교육의 기본 이념이기도 합니다. 인본주의 사상과 이타주의적 윤리관, 현세를 우선시하는 사고가 그 핵심으로 설명됩니다.
한국 학교의 교육 목표가 신화 속 건국이념에서 온 문장이라는 사실은, 이 나라가 자기 기원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 주는 가장 짧은 예입니다.
단군과 왕검은 다른 말입니다. 왕검은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의 칭호로, 일반적으로 정치적 군장을 뜻하는 '임금'으로 해석됩니다. '단군왕검'은 이름이 아니라 두 개의 칭호가 붙은 형태로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고조선을 보러 갈 만한 곳
자주 묻는 질문
고조선은 정말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나요?
『삼국유사』가 건국 기년을 서기전 2300년대로 규정했습니다. 다만 학술 백과사전은 그 연대를 각 시기의 역사의식을 반영한다는 사학사적 의의는 크지만 고조선사 자체에는 실제적인 의미가 없다고 평가합니다. 요서·요동에서도 농경과 금속기 보급이 서기전 천수백 년을 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조선'과 '조선'은 다른 나라인가요?
처음 사서에 등장할 때 이름은 '조선'이었고, '고조선'은 『삼국유사』가 위만조선과 구분하려고 쓴 말입니다. 1392년에 세워진 조선 왕조와는 2천 년가량 떨어진 완전히 다른 나라입니다.
고조선은 언제 없어졌나요?
서기전 108년에 한이 위만조선을 멸하고 그 중심부에 낙랑군 조선현을 설치했습니다.
고조선의 수도는 어디였나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낙랑군 조선현이 평양 지역이었으므로 위만조선의 왕검성과 그 앞 시기의 수도도 평양이었을 것으로 보지만, 중심지가 시종 평양 일대였던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고조선 유적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나요?
남아 있는 건물이 없어 유물로 만나게 됩니다. 서울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선사·고대관이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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