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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한국사에 처음 등장한 나라

박물관 첫 전시실에서 만나는 고조선. 단군 건국 연대가 왜 사료마다 다르게 읽히는지, 서기전 108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홍익인간'이 왜 지금도 대한민국 교육법에 남아 있는지.

12 분 읽기

언어

거울못 너머로 보이는 국립중앙박물관 전경

국립중앙박물관을 순서대로 걸으면 가장 먼저 만나는 이름이 고조선입니다. 한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국가이고, 그래서 안내판은 대개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이 세웠다"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 문장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부터 정리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한국의 학술 백과사전은 그 연대를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후대의 역사 인식으로 다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그 구분을 그대로 지키면서, 사료로 확인되는 부분과 상징으로 남은 부분을 나누어 설명합니다.

한눈에 보기

  • 한국사 최초의 국가

    고조선은 한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국가입니다.

  • '고조선'은 후대의 이름

    처음 사서에는 그냥 '조선'입니다. 고조선이라는 말은 『삼국유사』가 위만조선과 구분하려고 처음 썼습니다.

  • 서기전 108년

    한이 위만조선을 멸하고 그 중심부에 낙랑군 조선현을 설치했습니다.

  • 홍익인간은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단군신화의 건국이념이면서, 대한민국 교육법이 정한 교육의 기본 이념이기도 합니다.

이름부터 — '고조선'은 그 나라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이 나라가 처음 사서에 등장할 때의 이름은 그냥 '조선(朝鮮)'이었습니다. '고조선'이라는 명칭은 『삼국유사』에서 처음 사용했고, 그것은 뒤에 등장하는 위만조선과 구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고조선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입니다. 조선 왕조와 구분되는 '옛 조선'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전시실에서 '조선'이라는 글자를 보면 두 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 왕조의 조선과 고조선의 조선은 2천 년쯤 떨어진 다른 나라입니다.

건국 연대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

『삼국유사』는 고조선의 건국 기년을 서기전 2300년대로 규정했습니다.

백과사전은 이 연대를 평가할 때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그 기년은 우리 선인들이 고조선을 어떻게 인식했는가 하는 각 시기의 역사의식을 반영한다는 면에서 사학사적 의의는 크지만, 고조선사 자체에는 실제적인 의미가 없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유도 함께 제시됩니다. 한반도와 만주 일원에서 농경과 금속기가 가장 빨리 보급된 요서·요동 지역에서도 그 시기가 서기전 천수백 년을 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행자에게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서기전 2333년이라는 숫자는 한국 문화에서 실재하는 상징이고, 개천절이라는 공휴일도 여기에서 나옵니다. 다만 그것은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건국 연대와는 다른 층위의 이야기입니다. 두 가지를 같은 것으로 소개하는 안내문을 만나면 이 문단을 떠올리면 됩니다.

사료로 확인되는 고조선

문헌에서 조선이 뚜렷하게 잡히는 것은 서기전 4세기 무렵입니다.

『사기』 소진전에는 소진이 연나라 문후(서기전 361∼서기전 333)에게 "연의 동방에는 조선 요동이 있고"라고 말한 대목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서기전 4세기 중반에는 조선이 연의 변경에서 멀지 않은 주요 세력으로 북중국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이 후퇴의 기록입니다. 『위략』은 조선이 연과 각축을 벌이다가 연 소왕(서기전 331∼279) 때 진개의 침공으로 서쪽 영토 '2,000리'를 상실했다고 전합니다. '2,000리'라는 수치 자체는 논란이 있지만, 『사기』 조선전에도 영토를 잃었다는 기록이 있어 고조선은 이 무렵 서쪽 땅을 잃고 연과 청천강을 경계로 마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끝이 옵니다. 서기전 108년, 한이 위만조선을 멸하고 그 중심부에 낙랑군 조선현을 설치했습니다.

고조선은 어디에 있었나 — 아직 정해지지 않은 문제

전시실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이 위치입니다. 정직한 답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백과사전은 고조선 중심지의 위치 자체가 분명하지 않고, 그래서 그동안의 고조선사 연구가 주로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다만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가 평양 지역이었으므로 위만조선의 왕검성과 그 앞 시기 고조선의 수도도 평양이었을 것으로 보되, 중심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평양 일대였던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1993년 평양에서 '단군릉'이 발굴되었다는 발표가 있었고, 인골 연대측정 결과 그 기년이 서기전 3011년이라고 주장되었습니다. 백과사전은 이에 대해 그 무덤이 모줄임고임 천장의 석실무덤이고 출토된 금동관도 삼국시대의 것이어서, 무덤의 주인공은 고구려 때 사람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싣고 있습니다. 확정된 사실로 소개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행자가 고조선을 만나는 곳, 그리고 남아 있는 한 마디

고조선은 눈으로 볼 건물이 남아 있지 않은 시대입니다. 청동기와 무덤에서 나온 유물로 만나게 되고, 서울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선사·고대관이 그 자리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홍익인간'입니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고조선의 건국이념이면서, 동시에 대한민국 교육법이 정한 교육의 기본 이념이기도 합니다. 인본주의 사상과 이타주의적 윤리관, 현세를 우선시하는 사고가 그 핵심으로 설명됩니다.

한국 학교의 교육 목표가 신화 속 건국이념에서 온 문장이라는 사실은, 이 나라가 자기 기원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여 주는 가장 짧은 예입니다.

단군과 왕검은 다른 말입니다. 왕검은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의 칭호로, 일반적으로 정치적 군장을 뜻하는 '임금'으로 해석됩니다. '단군왕검'은 이름이 아니라 두 개의 칭호가 붙은 형태로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고조선을 보러 갈 만한 곳

자주 묻는 질문

고조선은 정말 기원전 2333년에 세워졌나요?

『삼국유사』가 건국 기년을 서기전 2300년대로 규정했습니다. 다만 학술 백과사전은 그 연대를 각 시기의 역사의식을 반영한다는 사학사적 의의는 크지만 고조선사 자체에는 실제적인 의미가 없다고 평가합니다. 요서·요동에서도 농경과 금속기 보급이 서기전 천수백 년을 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고조선'과 '조선'은 다른 나라인가요?

처음 사서에 등장할 때 이름은 '조선'이었고, '고조선'은 『삼국유사』가 위만조선과 구분하려고 쓴 말입니다. 1392년에 세워진 조선 왕조와는 2천 년가량 떨어진 완전히 다른 나라입니다.

고조선은 언제 없어졌나요?

서기전 108년에 한이 위만조선을 멸하고 그 중심부에 낙랑군 조선현을 설치했습니다.

고조선의 수도는 어디였나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낙랑군 조선현이 평양 지역이었으므로 위만조선의 왕검성과 그 앞 시기의 수도도 평양이었을 것으로 보지만, 중심지가 시종 평양 일대였던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고조선 유적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나요?

남아 있는 건물이 없어 유물로 만나게 됩니다. 서울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선사·고대관이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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