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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가 언제부터 '삼국'이었는지는 생각보다 늦습니다. 3세기까지 백제와 신라는 삼한의 작은 나라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율령이 왜 기준이 되는지, 그리고 남은 것이 왜 경주에 몰려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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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선사·고대관 고구려실에 전시된 고구려의 금동관

한국사에서 가장 자주 듣게 되는 시대 이름이 삼국시대입니다.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가 정립하였던 한국사의 한 시기를 가리킵니다.

여행 전에 알아 두면 유용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세 나라가 '삼국'이라고 부를 만한 상태가 된 것은 생각보다 늦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왜 이 시대의 유적이 경주에 몰려 있고 다른 지역에는 적은지를 설명해 줍니다.

한눈에 보기

  • 언제부터 '삼국'인가

    삼국이 고대 국가 체제를 완비해 간 4세기 이후부터 신라의 통일까지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기준은 율령

    율령의 반포가 고대 국가의 완비를 뜻한다고 봅니다. 고구려 소수림왕, 백제 근초고왕, 신라 법흥왕 때입니다.

  • 3세기까지는 '삼국'이 아니었습니다

    그때까지 백제와 신라는 삼한의 여러 작은 나라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 끝은 660년과 668년

    신라가 당과 연합해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렸습니다.

세 나라가 나란히 선 시기는 언제부터인가

백과사전은 이 시대의 범위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삼국이 고대 국가의 체제를 완비해 간 4세기 이후부터 신라의 삼국통일까지를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삼국의 국가 형성부터 포함시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두 시점이 각각 다릅니다. 국가를 형성한 시점은 대체로 1세기 고구려의 태조대왕, 3세기 백제의 고이왕, 4세기 신라의 나물마립간 재위기를 전후로 봅니다. 중앙집권적 영역 국가로 체제를 완비한 시점은 그보다 늦어 4세기 고구려의 소수림왕, 4세기 백제의 근초고왕, 6세기 신라의 법흥왕 때입니다.

그 판단의 기준이 율령의 반포입니다. 율령이 반포되었다는 것은 곧 고대 국가가 완비되었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박물관에서 비석과 제도 관련 유물이 유난히 강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삼국지'의 삼국과는 다릅니다 — 그리고 3세기까지는 삼국도 아니었습니다

가장 자주 생기는 오해를 먼저 정리하겠습니다. 한국의 삼국시대는 중국의 삼국지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초기에는 '세 나라가 대등하게 맞선 구도'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삼국사기』는 삼국의 시조가 나라를 세우자마자 급격히 영역을 넓히고 제도를 갖춘 것처럼 서술하지만, 이는 후대의 윤색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같은 시기 중국 측 역사서인 『후한서』와 『삼국지』를 보면 3세기까지 삼국은 주변의 여러 나라를 압도하지 못했고, 백제와 신라는 아직 삼한의 여러 작은 나라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3세기까지 삼국이 정립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고고학에서는 이 앞 시기를 따로 부릅니다. 서기전 1세기에서 서기 3세기까지를 원삼국시대라 하고, 철기가 널리 쓰인 4세기 이후의 삼국시대와 구분합니다.

여행자에게 이 이야기는 실용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삼국시대 유적이라고 소개되는 것들은 대부분 4세기 이후의 것이고, 그보다 앞선 시기는 무덤과 토기로만 남아 있습니다.

세 나라는 어떻게 끝났나

끝은 7세기 중엽입니다.

세 나라는 체제를 정비한 뒤 세력을 넓히는 과정에서 서로 충돌했습니다. 고구려의 남진 정책과 백제의 북진 정책이 대립했고, 후발국이던 신라는 그 틈에서 한강 유역을 차지해 중국과의 교통로를 확보하려 했습니다.

그다음이 결정적입니다. 당과 고구려가 충돌하면서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하고 신라가 고립되는 국면이 만들어졌고, 신라는 대당외교에 집중해 나당연합군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삼국을 통일했습니다. 백제는 660년에 멸망했고, 고구려는 668년까지 존속했습니다.

다만 이 통일에는 대가가 있었습니다. 백과사전은 당나라의 출현이 민족통일에 많은 손상을 입혀 결국 고구려의 중요 지역이었던 요동 지방을 당에 넘겨주게 되었다고 적습니다. 그리고 통일 이후 발해와 신라의 남북국 시대가 시작됩니다.

이 뒤의 이야기는 통일신라에서 이어집니다.

지금 무엇을 볼 수 있나 — 왜 경주에 몰려 있나

세 나라의 유적이 남아 있는 양은 크게 다릅니다.

고구려의 중심지는 대부분 북한과 중국 동북부에 있어 남한에서는 접근할 수 없습니다. 백제의 옛 중심지는 공주·부여·익산 지역이고, 신라의 수도 경주는 도시 전체가 그대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여행 일정에서 삼국시대는 사실상 경주에서 만나는 시대가 됩니다. 왕릉과 천문대, 궁궐터가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모여 있는 곳은 경주뿐입니다. 서울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 선사·고대관이 세 나라를 나란히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경주에서 한 곳만 고른다면 대릉원입니다. 삼국시대 신라가 어떤 규모의 국가였는지를 설명이 아니라 크기로 보여 주는 곳이라, 안내판을 읽기 전에 이해가 먼저 됩니다.

삼국시대를 만나는 곳

자주 묻는 질문

삼국시대는 언제부터 언제까지인가요?

삼국이 고대 국가 체제를 완비해 간 4세기 이후부터 신라의 삼국통일까지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삼국의 국가 형성부터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의 삼국시대와 중국의 삼국지는 관계가 있나요?

없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의 다른 시대입니다. 다만 중국 측 사서인 『삼국지』는 3세기까지 한반도 상황을 전하는 사료로 인용됩니다.

고구려·백제·신라는 처음부터 대등했나요?

아니었습니다. 『후한서』와 『삼국지』를 보면 3세기까지 삼국은 주변 나라들을 압도하지 못했고, 백제와 신라는 삼한의 여러 작은 나라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삼국은 어떻게 통일됐나요?

당과 고구려가 충돌하면서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해 신라가 고립되자, 신라가 대당외교에 집중해 나당연합군으로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렸습니다. 백제는 660년, 고구려는 668년입니다.

고구려 유적은 한국에서 볼 수 있나요?

고구려의 중심지는 대부분 북한과 중국 동북부에 있어 남한에서는 유적지로 방문할 수 없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고구려실의 유물로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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