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역사: 한양에서 지금까지
1394년에 계획된 도시가 어떻게 지금의 서울이 되었는지. 성곽이 그은 경계, 20세기에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 그리고 1950년 여름 이 도시가 세 달 만에 두 번 주인이 바뀐 이야기.
언어

서울은 오래된 도시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도심의 대부분이 20세기 후반 이후의 건물이고, 오래된 것은 드문드문 섬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의 뼈대는 1394년에 정해졌고, 그 뒤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 글은 그 뼈대가 무엇이고, 그 위에서 지난 600년 동안 무엇이 지워지고 무엇이 남았는지를 따라갑니다. 더 가까운 시기의 걷기 코스는 서울의 근현대사 산책에 따로 있습니다.
한눈에 보기
1394년 9월부터 약 2년
종묘와 사직, 궁궐과 여러 관아, 도성을 짓는 공사가 국력을 기울여 이어졌습니다.
한양부에서 한성부로
공사 중간에 행정 단위의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근정전을 가린 건물
총독부청사가 근정전 정면 앞에 세워져 궁의 중심건물을 완전히 가렸습니다.
1950년 여름, 세 달
6월 27일 점령되었고 9월 26일 유엔군이 진입해 29일 수복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이 도시는 한 번에 계획되었습니다
서울의 첫 번째 사실은 이것입니다. 자라난 도시가 아니라 지어진 도시입니다.
1394년 9월부터 약 2년 동안 국력을 기울여 한양에 종묘와 사직, 궁궐과 여러 관아, 도성을 짓는 공사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 한양부는 이름을 한성부로 바꾸었습니다.
목록의 순서가 도시의 논리입니다. 제사 시설이 먼저, 통치자의 거처가 그다음, 행정 기구가 그다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전부를 두르는 성곽입니다. 왜 그 순서였는지는 한양 천도에서 다룹니다.
지금도 이 배치는 남아 있습니다. 경복궁을 가운데 두고 종묘가 동쪽, 사직단이 서쪽에 있고, 그 바깥을 능선을 따라 성곽이 돕니다.
성곽이 그은 경계 — 그리고 그 경계가 사라진 방식
한양도성은 방어 시설이면서 동시에 이 도시의 정의였습니다. 성 안이 도성이고 밖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그 경계를 확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성곽을 한 구간 걷는 것입니다. 인왕산이나 낙산 구간에 오르면 성벽이 능선을 따라 이어지고 그 안쪽에 도심의 고층 건물이 채워져 있는 광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이 사진 한 장이 서울의 600년을 설명합니다.
성문 몇 개는 지금 도로에 둘러싸인 섬이 되었습니다. 성벽이 끊어진 자리에 길이 났기 때문입니다. 문은 남았고 벽은 사라진 구간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20세기 도시화의 기록입니다.
20세기,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
서울의 근대는 도시 외곽이 아니라 정중앙에서 진행되었습니다.
1910년 8월 29일 이후 일본제국주의는 식민지 통치기구로서 조선총독부를 설치했고, 군사적으로는 일본 육군 제20사단을 용산에 주둔시켜 중부와 남부 조선을 관할하게 했습니다. 용산이 오랫동안 군 주둔지였던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상징적으로 가장 큰 사건이 궁궐에서 일어났습니다. 궁의 중심건물인 근정전 정면 앞에 매우 큰 석조건물인 총독부청사를 지어 근정전을 완전히 가려 버렸습니다.
이 건물의 수명이 길었다는 점도 서울의 20세기를 보여 줍니다. 1945년 광복 후 일인들이 지었던 총독부청사는 정부종합청사로 활용되었고, 구 총독부청사는 1995년 8·15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철거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원래 있던 흥례문 권역이 2001년 10월 복원·낙성되었습니다.
1395년의 자리가 1995년에 되돌려지고 2001년에 복원되었다는 뜻입니다. 경복궁에서 그 자리를 직접 걸을 수 있습니다.
1950년 여름 — 세 달 사이의 서울
서울이 겪은 가장 급격한 변화는 석 달 만에 일어났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시작된 전면 남침은 6월 27일에는 이미 서울을 점령하기에 이르렀고, 7월 3일에는 한강을 넘어 남진을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인천에 상륙한 유엔군은 9월 26일에 서울에 진입했고, 완전히 회복한 뒤인 9월 29일에 서울수복 기념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석 달 사이에 도시의 주인이 두 번 바뀌었습니다. 한국전쟁에서 도시가 겪은 일은, 지금 도심에 오래된 건물이 드문 이유의 일부입니다.
지금 서울에서 시대를 읽는 법
서울에서 역사를 보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은 연대순이 아니라 층위별입니다.
- 14세기의 층 — 궁궐과 종묘의 자리, 그리고 성곽이 그은 경계
- 19세기의 층 — 지금 서 있는 궁궐 건물 대부분
- 20세기의 층 — 용산, 그리고 도심에서 사라진 것과 복원된 것
- 현재의 층 — 그 위에 얹힌 도시
한 장소에서 이 층들이 겹쳐 보이는 지점이 몇 군데 있습니다. 광화문 앞이 그렇고, 인왕산 성곽길에서 내려다보는 도심이 그렇습니다.
서울의 층을 볼 수 있는 곳
자주 묻는 질문
서울은 언제부터 수도였나요?
조선이 1394년에 한양으로 천도했습니다. 그해 9월부터 약 2년 동안 종묘와 사직, 궁궐과 관아, 도성을 짓는 공사가 이어졌습니다.
'한양'과 '한성', '서울'은 어떻게 다른가요?
한양부는 도성 건설 중간에 한성부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같은 도시의 다른 시기 명칭입니다.
경복궁 앞에 있었다는 총독부 건물은 어떻게 됐나요?
근정전 정면 앞에 세워져 근정전을 완전히 가렸고, 광복 후에는 정부종합청사로 쓰이다가 1995년 광복 50주년에 철거되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원래 있던 흥례문 권역이 2001년 10월에 복원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때 서울은 어떻게 됐나요?
1950년 6월 27일에 점령되었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9월 26일 유엔군이 진입해 9월 29일에 수복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서울에서 옛 도시의 경계를 볼 수 있나요?
한양도성이 능선을 따라 남아 있습니다. 인왕산이나 낙산 구간을 걸으면 성벽 안쪽으로 도심이 채워진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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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확인일:
공식 출처
- 사실 확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조선(1394년 9월부터 약 2년간 한양에 종묘·사직·궁궐·관아·도성을 짓는 공사, 공사 중 한양부에서 한성부로 개칭)
- 사실 확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경복궁(근정전 앞의 총독부청사 건립, 1945년 이후 정부종합청사로 사용, 1995년 철거, 2001년 10월 흥례문 권역 복원·낙성)
- 사실 확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일제강점기(1910년 8월 29일 이후 조선총독부 설치, 일본 육군 제20사단의 용산 주둔)
- 사실 확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한국전쟁(1950년 6월 27일 서울 점령, 7월 3일 한강 도하, 9월 26일 유엔군 서울 진입과 9월 29일 서울수복 기념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