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과 현대 한국의 출발
1945년 8월 15일 이후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총선거가 남한에서만 치러졌는지, 5·10 선거의 투표율과 의석 수,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1919년에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사실.
언어

8월 15일은 한국의 공휴일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하여 우리가 해방되었던 날입니다.
그런데 이 날 이후 3년이 지금의 한국을 만들었습니다. 여행 중에 만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1945년에 곧바로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 3년이 왜 그렇게 흘러갔는지가 이 글의 내용입니다.
한눈에 보기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하여 해방된 날입니다. 1910년 8월 22일부터 만 35년입니다.
1948년 5월 10일
남한 유권자 총수의 75%가 투표해 198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제헌의회가 출범했습니다.
총선거는 남한에서만
선거 감시를 위한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입북이 소련 당국에 의해 거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름은 1919년에 정해졌습니다
'대한민국'은 상해 임시정부가 헌법에서 국호로 제정한 뒤 지금까지 쓰이는 이름입니다.
'광복'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
한국어의 광복(光復)은 '빛을 되찾는다'는 뜻입니다. 단순한 해방과는 결이 다릅니다.
백과사전은 이 관념을 우리가 일제에 의해서 강요당한 식민지화 과정이라는 민족적 모순에 대한 반제(反題)로서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이 말은 20세기 초엽 대한제국이 붕괴되기 시작할 때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의 시대에 대해서만 고유하게 적용될 수 있는, 반일 민족독립운동의 사상과 운동을 포괄하는 관념입니다.
기간으로는 1910년 8월 22일 강제병합 때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 때까지 만 35년 동안 지속된 민족주의운동을 가리킵니다. 일제강점기와 같은 기간을, 지배가 아니라 저항의 편에서 부르는 이름인 셈입니다.
해방은 누가 가져왔는가 — 기록에 남은 자기 인식
이 시기를 다루는 전시에서 가장 자주 마주치는 주제이고, 백과사전도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적어 둡니다.
8월 9일 소련은 얄타협정에 의거해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12일에는 웅기·나진, 14일에는 청진에 상륙하기 시작해 38선 전역을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미군이 38선 이남을 점령했습니다.
백과사전은 그 결과 한국인들이 광복을 가져온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미군과 소련군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38선이 생길 때까지만 해도 분단은 일시적인 것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두 군대가 남북을 나누어 점령하는 것을 보고 인식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해석이 아니라 사료에 실린 자기 평가입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이 시기 전시를 볼 때 배경으로 알아 두면 전시의 어조가 이해됩니다.
3년 — 왜 선거가 반쪽이 되었나
1945년과 1948년 사이에 일어난 일은 단계가 분명합니다.
미군정 당국은 남한에서의 좌우합작을 추진했으나 실패했고, 이승만의 단독정부 추진이 진행되는 가운데 '남조선과도입법의원'조차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결정인 신탁통치안을 거부했습니다. 미소공동위원회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신탁통치 대신에 최단시일 내 독립정부 수립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줄이 있습니다. 총선거를 감시하기 위한 국제연합 한국임시위원단의 입북이 소련 당국에 의하여 거절됨으로써, 총선거는 선거감시가 가능한 남한지역에서만 이루어졌습니다.
반대도 있었습니다. 김구·김규식 등 일부 지도자들은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면서 통일정부 수립운동을 벌였고,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호응해 1948년 4월 평양에서 남북정치협상회의가 열렸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습니다.
1948년 5월 10일 — 숫자로 남은 출발점
1948년 5월 10일 남한지역에서는 유권자 총수의 75%가 투표에 참가하여 198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함으로써 제헌의회를 출범시켰습니다.
제1공화정은 이 5·10 총선거의 기초 위에서 세워졌습니다. 다만 김구와 김규식을 중심으로 하는 남북협상 지지세력은 이 선거를 거부했습니다.
북쪽에서도 같은 시기에 절차가 진행되었습니다. 북한 당국은 1947년 11월 헌법 제정에 착수해 1948년 4월 초안을 채택하고, 그 해 9월 8일 '최고인민회의'를 구성한 뒤 이를 확정했습니다.
두 절차가 나란히 진행된 결과가 분단이고, 2년 뒤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이름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새 국가가 쓴 이름은 새로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1919년 상해에 수립된 임시정부가 헌법에서 국호로 제정한 이후 현재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3·1운동의 해에 정해진 이름이 그대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광복절과 3·1절은 서로 떨어진 기념일이 아닙니다. 하나는 이름이 정해진 해를, 다른 하나는 그 이름이 실제 국가의 이름이 될 수 있게 된 날을 기념합니다.
이 시기를 볼 수 있는 곳
자주 묻는 질문
광복절은 무엇을 기념하나요?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하여 한국이 해방된 날을 기념합니다.
'광복'과 '해방'은 같은 말인가요?
광복은 '빛을 되찾는다'는 뜻으로, 식민지화라는 민족적 모순에 대한 반제로서 발생한 관념입니다. 1910년 8월 22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만 35년의 반일 민족독립운동을 포괄하는 말로 쓰입니다.
왜 총선거가 남한에서만 치러졌나요?
총선거를 감시하기 위한 국제연합 한국임시위원단의 입북이 소련 당국에 의해 거절되었기 때문에, 선거 감시가 가능한 남한지역에서만 이루어졌습니다.
1948년 5월 10일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남한 유권자 총수의 75%가 투표에 참가해 198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제헌의회가 출범했습니다. 제1공화정은 이 선거의 기초 위에 세워졌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은 언제 정해졌나요?
1919년 상해에 수립된 임시정부가 헌법에서 국호로 제정한 뒤 현재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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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확인일:
공식 출처
- 사실 확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8·15광복(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전과 해방, 1910년 8월 22일부터 만 35년, 얄타회담의 신탁통치 논의, 소련의 대일선전포고와 38선 이북 점령, 광복의 주체에 대한 인식)
- 사실 확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대한민국(미소공동위원회 결렬 후 독립정부 수립 추진,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입북 거절, 1948년 5월 10일 총선거의 투표율 75%와 198명 선출, 제헌의회 출범, 제1공화정, 김구·김규식의 남북협상)
- 사실 확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국호(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1919년 상해에 수립된 임시정부가 헌법에서 국호로 제정한 이후 현재까지 사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