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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 육군이 쓰던 주소 위에 지었다

1979년에 제안돼 세 번 무산됐고, 육군본부가 막 비운 자리에 1994년 문을 열었습니다. 이 기관이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지, 그리고 박물관이면서 동시에 기념관인 곳을 어떻게 읽을지.

12 분 읽기

언어

각국 국기가 늘어선 진입로 끝에서 본 전쟁기념관 정면

외국에서 오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대개 하나, 한국전쟁입니다. 밖에서 가장 많이 알려졌으면서 순서대로는 가장 덜 이해되는 대목이고, 이 기관은 바로 그 일을 잘합니다. 발발부터 정전까지를 펼쳐 놓습니다.

다만 들어가기 전에 알아 두면 건물이 다르게 읽히는 것이 둘 있습니다.

첫째, 이곳은 박물관이면서 기념관입니다. 중립적인 자료 창고가 아니라 기리기 위해 세운 기관이고, 스스로도 그렇게 말합니다. 둘째, 이 건물이 서 있는 땅 자체가 한국 군사사의 한 조각입니다.

관람 시간·전시실·교통 같은 실제 정보는 기념관의 장소 페이지에 있습니다. 이 글은 왜 생겼고, 왜 15년이 걸렸으며, 무엇을 보여주는가를 다룹니다.

한눈에 보기

  • 세 번 무산됐다

    1979년·1980년·1987년의 계획이 각각 재원과 부지, 정치·사회적 변란, 올림픽 유치 예산 때문에 중단되었습니다.

  • 육군이 먼저 나갔다

    1988년 육군본부가 대전으로 옮기면서 용산의 부지가 확보되었습니다.

  • 1994년 6월 10일 개관

    옛 육군본부 자리에 지었고, 개관 당시 소장품은 28,543점, 그중 9,387점을 전시했습니다.

  • 옥내전시실 일곱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 호국추모실, 전쟁역사실, 6·25전쟁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방산장비실, 대형장비실입니다.

지어지지 않은 15년

이 기관의 설립 과정 자체가 국가 사업이 어떻게 멈추는가에 대한 작은 사례입니다.

1979년에는 중앙정보부에서 가칭 6·25전쟁관 건립방안을 연구한 바 있었으나 재원조달과 부지선정 등의 문제로 더 이상 추진되지 못했습니다. 1980년에 들어 국방부가 주관하여 기념관 건립연구를 진행했지만 이 또한 정치·사회적 변란으로 실행과정에서 중단되었으며, 1987년에 다시 논의된 건립계획도 올림픽 유치 등의 막대한 국가예산 소요로 인하여 논의가 중단되었습니다.

세 번의 시도, 세 가지 다른 장애물, 그리고 건물은 없었습니다.

움직인 계기는 1988년 6월 22일 대통령이 국방부를 순시하는 자리에서 기념관 추진을 지시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조건 하나가 맞아떨어집니다. 1988년 육군본부의 대전 이동에 따른 용산지역의 부지확보로 건립 여건이 성숙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빨랐습니다. 1988년 9월 1일 전쟁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발족했고, 1988년 12월 정기국회에서 「전쟁기념사업회법」이 의결되어 12월 31일 법률 제4076호로 공포되었으며, 1989년 1월 31일 전쟁기념사업회가 창립되었고, 1990년 9월 28일 기공식을 가졌습니다. 그 후 약 4년간의 공사와 전시물 수집을 거쳐 1994년 6월 10일에 개관했습니다.

그 땅 자체

이 자리에 무게를 주는 대목이고,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기념관은 서울 용산구 용산동 1가, 옛 육군본부 자리에 있습니다.

용산은 오래 군사 지역이었습니다. 서울의 역사에 적었듯 일제강점기에 일본 육군의 한 사단이 용산에 주둔했고, 그것이 이 지역이 오래 군사적 성격을 띤 배경입니다. 같은 땅에 이어 대한민국 육군본부가 있었고, 1988년에 육군이 떠나자 그 자리에 나라가 자기 전쟁에 관한 박물관을 지었습니다.

그러니 이 부지는 교통이 좋아서 고른 중립적인 땅이 아닙니다. 이 기관이 다루는 주제 그 자체인 주소입니다.

무엇을 보여주는가

이름이 오해를 부르니 범위를 정확히 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한국전쟁만 다루는 곳이 아닙니다.

옥내전시실은 호국추모실, 전쟁역사실, 6·25전쟁실, 해외파병실, 국군발전실, 방산장비실, 대형장비실 등 7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옥내전시실에는 삼국시대로부터 현대까지의 각종 호국전쟁 자료가 실물·디오라마·복제품·기록화·영상 등 다양한 전시기법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폭이 1950년 바깥에서도 쓸모 있게 만듭니다. 전쟁역사실이 이 가이드의 나머지와 겹치는 자리입니다. 임진왜란이순신의 해전이 이 전시실이 펼치는 그 계열에 속합니다.

6·25전쟁실은 전쟁의 발발 원인과 경과, 그리고 휴전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구성이 중요한 것은, 이 전쟁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가 1953년에 전쟁이 끝났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정전협정은 전투를 멈춘 것이고, 그 뒤의 분단은 한국전쟁과 분단에서 다룹니다.

개관 당시 소장품은 28,543점이었으며 이 가운데 9,387점을 전시했습니다.

기념관을 읽는 법

편집자로서 한마디 덧붙입니다.

기념관은 국가의 서술을 제시합니다. 이 기관이 스스로 밝히는 기능에는 전시와 자료수집·연구, 교육활동이 있고, 그와 함께 호국선열들의 희생을 추모하는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있습니다. 마지막 것은 앞의 셋과 같은 종류의 활동이 아니고, 완전히 거리를 둔 역사 서술을 기대하고 온 관람객은 이 건물을 잘못 읽게 됩니다.

비판이 아닙니다. 어디의 기념관이든 그렇게 작동합니다. 다만 알고 있으면 쓸모가 있고, 특히 야외 구역에서 그렇습니다. 장비 전시와 추모 조형물은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니고 나란히 서 있습니다.

전쟁을 추모가 아니라 서사로 먼저 보고 싶다면 한국전쟁을 읽고 이곳을 나중에 오세요. 둘은 다른 일을 합니다.

야외전시를 옥내보다 먼저 보세요. 밖의 항공기와 전차와 함정은 가장 즐겁게 보이면서 시간 속에 놓기는 가장 어려운 부분이고, 그 순서를 주는 것이 옥내전시실입니다. 거꾸로 돌면 연대기가 커다란 물건들의 모음으로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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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언제 문을 열었나요?

1994년 6월 10일이고 용산의 옛 육군본부 자리입니다. 개관 당시 소장품은 28,543점, 전시는 9,387점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요?

앞선 시도가 세 번 무산됐습니다. 1979년 연구는 재원과 부지 문제로, 1980년 국방부 연구는 정치·사회적 변란으로, 1987년 계획은 올림픽 유치 등의 국가예산 소요로 중단되었습니다. 1988년 6월 22일의 추진 지시 이후 다시 움직였습니다.

한국전쟁만 다루나요?

아닙니다. 옥내전시실이 일곱이고, 삼국시대로부터 현대까지의 호국전쟁 자료를 다룹니다. 6·25전쟁은 그 안의 한 전시실입니다.

왜 용산에 있나요?

1988년 육군본부가 대전으로 이동하면서 부지가 확보되었습니다. 그 옛 육군본부 자리에 지었고,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부터 군사 지역이었습니다.

박물관인가요, 기념관인가요?

스스로 밝히기로는 둘 다입니다. 전시와 자료수집·연구, 교육 기능에 더해 호국선열의 희생을 추모하는 공간으로서의 기능도 있습니다. 야외 구역을 볼 때 특히 도움이 되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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