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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조선의 정궁

창건 때는 390여 칸이었고, 중건된 뒤에는 7,225칸 반이었습니다. 270년 동안 비어 있었던 이유, 4,000여 칸이 헐려 팔린 시기, 그리고 지금 흥례문 자리에 무엇이 서 있었는지.

13 분 읽기

언어

해태상과 회랑이 있는 경복궁 근정전 앞뜰

경복궁은 조선의 법궁이었습니다. 이 궁궐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는 건물이 아니라 그 건물들이 몇 번 사라졌다가 다시 세워졌는가입니다.

관람 시간·요금·교통 같은 실제 정보는 경복궁의 장소 페이지에 있습니다. 이 글은 지금 눈앞의 마당이 왜 그렇게 생겼는지를 다룹니다.

한눈에 보기

  • 처음에는 크지 않았습니다

    창건 당시 궁의 규모는 390여 칸으로 크지 않았습니다.

  • 1592년 전소, 270년 공백

    임진왜란으로 궁은 전소되었고, 중건이 완료된 것은 소실된 지 약 270년이 흐른 1867년입니다.

  • 중건 규모 7,225칸 반

    여느 궁궐의 규모나 격식을 훨씬 능가하는 대규모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궁성 담장 길이는 1,765칸입니다.

  • 1910년 이후 4,000여 칸

    전·당·누각 등 4,000여 칸의 건물을 헐어서 민간에 방매했습니다.

처음의 경복궁은 작았습니다

지금의 규모를 보고 들어가면 놓치는 사실입니다.

창건 당시 궁의 규모는 390여 칸으로 크지 않았습니다. 정전인 근정전이 5칸이었고, 상하층 월대와 행랑·근정문·천랑·각루, 강녕전 7칸, 연생전 3칸, 경성전 3칸, 왕의 평상시 집무처인 보평청 5칸 외에 상의원·중추원·삼군부 등이 마련된 정도였습니다.

한양 천도 직후에 지어진 궁궐이라, 새 왕조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크기였다고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1553년에는 강녕전에서 불이 나 근정전 북쪽의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이듬해에 강녕전 외에 교태전·연생전·흠경각·사정전을 복구했습니다.

270년 — 비어 있던 시간

1592년 임진왜란으로 궁은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이때 창덕궁·창경궁 등도 모두 불에 타버려, 난이 끝나고 왕이 환도했을 때 정릉동의 옛 월산대군가를 임시 어소로 정했습니다. 지금의 덕수궁이 궁궐이 된 경위가 여기에 있습니다.

복구는 계속 미뤄졌습니다. 문제는 왜란 직후부터 논의되었으나 실천에 옮겨지지 못했고, 선조는 환도한 뒤 가가라도 지을 것을 명했습니다. 1606년에는 궁궐영건도감을 설치하고 광화문과 근정전 등 주요건물만이라도 우선 지을 계획을 세웠으나, 일부 대신들이 '공사가 커서 1, 2년에 끝낼 수 없으므로 후에 일을 시작해야 한다'며 만류하자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중건이 완료된 것은 소실된 지 약 270년이 흐른 1867년의 일입니다. 공사는 1865년에 시작해 1867년 말에 완료되었습니다.

그동안 왕들이 실제로 지낸 곳이 창덕궁이었습니다. 경복궁이 '정궁'이면서도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는 사실이, 서울에 궁궐이 다섯인 이유의 절반입니다.

중건, 그리고 28년

다시 세워진 경복궁은 원래보다 훨씬 컸습니다.

수렴청정 중인 대왕대비의 강력한 의지로 여느 궁궐의 규모나 격식을 훨씬 능가하는 대규모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그 규모는 7,225칸 반이며, 후원에 지어진 전각은 융문당을 포함하여 256칸, 궁성 담장의 길이는 1,765칸이었습니다. 창건 때의 390여 칸과 비교하면 스무 배에 가깝습니다.

궁이 완성되고 나서 1868년에 왕은 경복궁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이 궁궐이 왕의 거처였던 기간은 짧습니다. 1895년에는 궁 안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은 이어한 지 27년째인 1896년에 러시아공관으로 거처를 옮겨, 경복궁은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습니다.

270년을 기다려 지은 궁궐이 28년 만에 비었습니다.

헐린 것들 — 그리고 지금 서 있는 자리

국권 상실 이후의 일이 지금 보이는 빈 마당을 만들었습니다.

1910년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궁 안의 전·당·누각 등 4,000여 칸의 건물을 헐어서 민간에 방매했습니다.1917년 창덕궁의 내전에 화재가 발생하자, 경복궁의 교태전·강녕전·연길당·경성전·연생전·흠경각·함원전·흥복전 등을 철거하여 그 재목으로 창덕궁의 대조전·희정당 등을 지었습니다.

남은 것은 근정전·사정전·수정전·천추전·집옥재·경회루와 근정문·홍례문·신무문·동십자각 정도였고, 정문인 광화문도 건춘문 북쪽으로 이건되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한 가지가 있습니다. 궁의 중심건물인 근정전 정면 앞에 매우 큰 석조건물인 총독부청사를 지어 근정전을 완전히 가려 버렸습니다.

지금 광화문을 지나 흥례문을 통과할 때 걷는 그 자리가 그 건물이 서 있던 자리입니다. 구 총독부청사는 1995년 8·15광복 50주년을 맞이하여 철거되었으며, 이 자리에 원래 있던 흥례문 권역이 2001년 10월 복원·낙성되었습니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구분하는 법

경복궁에서 가장 쓸모 있는 구분입니다.

현재 궁내에 남아 있는 주요건물은 근정문·근정전·사정전·천추전·수정전·자경전·경회루·재수각·함화당·향원정·집옥재·선원전 등이며, 복원된 건물은 강녕전·자선당·태원전·광화문 등입니다.

근정전은 국보(1985년 지정)로, 조선왕조 정궁의 정전답게 중층의 정면 5칸, 측면 5칸의 장대한 건물입니다. 다만 건물의 양식은 조선 말기에 속하여 세부의 장식적 처리가 두드러집니다. 14세기가 아니라 19세기의 건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이 궁궐이 중요한 이유는 위치입니다. 백과사전은 대부분의 건물이 없어지고 많은 전각이 복원된 것이지만, 창건 때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는 점을 이 궁궐의 값으로 적습니다.

건물은 19세기, 자리는 14세기. 이 한 줄을 들고 들어가면 관람이 달라집니다.

근정전 앞에서 뒤를 돌아보세요. 이 궁궐의 중심 축은 창건 때 잡힌 배치를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 위에 선 건물은 여러 번 헐리고 다시 세워졌지만, 건물이 놓인 선은 옮겨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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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지금의 경복궁 건물은 언제 지어진 건가요?

대부분 19세기입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뒤 약 270년이 흘러 1865년에 중건 공사가 시작되어 1867년 말에 완료되었습니다.

왜 270년이나 비어 있었나요?

복구 문제는 왜란 직후부터 논의되었으나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1606년 궁궐영건도감을 설치하고 광화문과 근정전만이라도 지으려 했지만, 공사가 커서 1, 2년에 끝낼 수 없다는 반대로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경복궁은 원래 얼마나 컸나요?

창건 당시에는 390여 칸으로 크지 않았습니다. 1867년 중건 때는 7,225칸 반으로, 궁성 담장 길이만 1,765칸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무엇이 사라졌나요?

1910년 이후 전·당·누각 등 4,000여 칸이 헐려 민간에 방매되었고, 1917년에는 교태전·강녕전 등을 철거해 그 재목으로 창덕궁의 대조전·희정당 등을 지었습니다. 근정전 앞에는 총독부청사가 세워져 근정전을 완전히 가렸습니다.

흥례문 자리에 총독부 건물이 있었나요?

네. 구 총독부청사는 1995년 광복 50주년에 철거되었고, 원래 그 자리에 있던 흥례문 권역이 2001년 10월에 복원·낙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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