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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와 불교 전성기

불국사와 석굴암이 왜 같은 해에 세계유산이 되었는지, 그리고 창건 연대가 751년에서 742년으로 옮겨간 이유. 경주에서 무엇이 원형이고 무엇이 1970년대 복원인지 구분하는 법.

12 분 읽기

언어

석굴암으로 오르는 연등 걸린 진입로와 석실을 감싼 목조 전각

삼국이 하나로 합쳐진 뒤의 신라를 흔히 통일신라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들이 지금 경주 여행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다만 '통일'이라는 말은 조심해서 쓸 필요가 있습니다. 백과사전은 당나라의 출현이 민족통일에 많은 손상을 입혀 결국 고구려의 중요 지역이었던 요동 지방을 당에 넘겨주게 되었다고 적고, 통일 이후를 발해와 신라의 남북국 시대로 부릅니다. 한반도 전체가 하나가 된 것이 아니라,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함께 있던 시기라는 뜻입니다.

한눈에 보기

  • '통일' 뒤에는 두 나라가 있었습니다

    통일 이후는 발해와 신라의 남북국 시대로 부릅니다. 요동은 당에 넘어갔습니다.

  • 불국사와 석굴암은 한 세트

    석굴암은 불국사의 부속 석굴이고, 1995년에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 창건 연대는 751년이 아닐 수 있습니다

    석가탑에서 나온 문서에 따라 불국사 창건 연대는 742년으로 정정되었습니다.

  • 돌은 원형, 나무는 복원

    두 탑과 석조물은 창건 때의 원형을 유지하지만, 복원된 목조건물의 시대양식은 혼재되어 있습니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왜 항상 같이 나오나

두 곳은 별개의 명소가 아닙니다. 석굴암은 조계종 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부속 석굴이고, 그래서 1995년에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삼국유사』의 설명은 두 곳의 관계를 더 분명하게 만듭니다. 김대성(700∼774)이 현세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창건하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불사를 세웠다는 기록입니다. 한 사람이 두 개의 절을 지은 것이고, 그래서 하나만 보면 이야기의 절반만 보게 됩니다.

석굴암은 인공 석굴을 통해 불국토를 구현한 신라 문화유산의 정수로 설명되며,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자연 동굴이 아니라 사람이 돌을 쌓아 만든 굴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안내판의 연도가 바뀐 이유 — 751년과 742년

현장에서 751년이라는 숫자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학계의 판단은 이미 한 번 움직였습니다.

『삼국유사』에는 751년(경덕왕 10)에 김대성이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판독과 역주가 끝난 석가탑 발견 문서에는, 경덕왕이 즉위한 742년에 김대성이 중시가 되기 이전부터 불국사 두 탑의 공사를 시작해 혜공왕 대에 마쳤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에 따라 창건 연대가 정정되었습니다.

이 문서들이 왜 더 무겁게 받아들여지는지도 나와 있습니다. 『삼국유사』보다 250년가량 앞선 기록이라는 점에서 신빙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같은 근거로 석굴암의 창건 연대도 751년보다 올라갈 가능성이 있고, 적어도 742년경에는 설계와 건설 계획이 시작되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이 있습니다. 『삼국유사』는 김대성이 751년에 공사를 시작했으나 완공을 보지 못한 채 774년에 죽었고, 김대성을 대신하여 나라에서 건축을 마무리했다고 전합니다. 개인이 시작한 절을 국가가 완공했다는 점에서, 불국사가 김대성 개인의 절이 아니라 신라 왕실을 위한 사찰이었다는 설이 제기되었습니다.

무엇이 원형이고 무엇이 복원인가

경주에서 가장 유용한 구분입니다.

불국사는 임진왜란 때 주요 전각이 불타 없어져 17세기에 중창되었고, 1970년대의 복원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보는 것은 두 층입니다. 두 탑과 석조물은 창건 때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복원된 목조건물의 시대양식은 혼재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보면 됩니다. 계단과 축대, 석가탑과 다보탑을 볼 때는 8세기를 보고 있는 것이고, 단청이 선명한 목조 건물을 볼 때는 20세기의 복원 작업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구분을 알고 가면 "생각보다 새것 같다"는 흔한 실망이 생기지 않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불국사는 김대성이 건설한 뒤 모두 아홉 차례 중창되었습니다. 신라 하대인 887년, 고려 현종 때인 1024년의 중수를 거쳐 조선시대에도 여러 차례 이어졌습니다. 억불숭유 정책을 편 조선시대에도 중수가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 이 절이 명맥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이 시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통일신라를 여행하는 방식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경주 시내입니다. 왕릉과 천문대, 궁궐터와 연못이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범위에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토함산입니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시내에서 떨어져 있고, 두 곳은 같은 산의 서쪽과 동쪽에 있습니다.

하루를 쓴다면 시내와 토함산을 나누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관람 시간과 요금은 계절과 운영 방침에 따라 바뀌므로, 아래 카드의 각 장소 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석굴암에서 기대를 조정해 두면 좋습니다. 본존불은 유리벽 너머로 보게 됩니다. 보존을 위한 조치이고, 굴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는 방식이 아닙니다. 이것을 모르고 가면 오르막을 걸어 올라간 뒤에 실망하기 쉽습니다.

통일신라를 보러 갈 만한 곳

자주 묻는 질문

불국사는 언제 세워졌나요?

『삼국유사』는 751년 김대성 창건으로 기록했지만, 석가탑에서 발견된 문서에 경덕왕이 즉위한 742년에 두 탑 공사를 시작했다고 적혀 있어 창건 연대가 742년으로 정정되었습니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따로 봐야 하나요?

원래 한 세트입니다. 석굴암은 불국사의 부속 석굴이고, 1995년에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토함산의 서쪽과 동쪽에 있습니다.

지금 보는 불국사는 원래 건물인가요?

일부만 그렇습니다. 임진왜란 때 주요 전각이 불타 17세기에 중창했고 1970년대 복원으로 현재 모습이 되었습니다. 두 탑과 석조물은 창건 당시의 원형이지만, 복원된 목조건물의 시대양식은 혼재되어 있습니다.

'통일신라'는 한반도 전체를 통일한 건가요?

아닙니다. 통일 이후 시기는 발해와 신라의 남북국 시대로 부릅니다. 또 당의 개입으로 고구려의 중요 지역이었던 요동 지방을 당에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석굴암은 자연 동굴인가요?

아닙니다. 사람이 만든 인공 석굴로, 인공 석굴을 통해 불국토를 구현한 신라 문화유산의 정수로 설명됩니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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