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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총: 집을 짓다가 나왔고, 칼집에 새겨진 왕의 이름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1921년 경주 노서리에서 가옥공사 중에 무덤이 우연히 뚫렸습니다. 정식 발굴이 아니어서 구조도 출토 상황도 애매한 채로 남았지만, 한국에서 처음으로 금관 일습이 나온 곳입니다. 그리고 2013년과 2015년에 칼집에서 「이사지왕」이라는 글자가 확인됐는데, 그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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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어두운 진열장 안에 걸린 금관총 금관. 出자 모양 세움 장식과 사슴뿔 모양 장식에 녹색 곡옥과 금 달개가 달려 있고, 관테 아래로 수하식 두 줄이 늘어져 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나온 금관 일습은 발굴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1921년 9월, 경주시 노서리에서 가옥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됐습니다.

이 한 줄이 이 무덤에 관해 우리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나눕니다.

한눈에 보기

  • 1921년, 공사 중에

    정식 발굴이 아니었고, 발견 당시 이미 유구의 상당 부분이 파괴돼 있었습니다.

  • 금관 높이 44.4cm

    내관과 외관으로 구성되고, 외관이 신라 금관의 전형입니다.

  • 요패 17줄

    신라에서 확인된 허리띠 가운데 가장 많습니다. 가장 긴 것이 54.5cm입니다.

  • 이사지왕

    칼집에 새겨진 왕의 이름이 확인됐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발굴되지 않은 무덤에서 배우는 법

금관총이라는 이름은 이 무덤이 준 것을 그대로 말합니다. 신라유물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어 있는 화려한 금관 일습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출토된 고분이라 그렇게 불립니다. 고유번호는 노서리 제128호분입니다.

그리고 대가가 있었습니다.

발견 당시부터 유구의 상당 부분이 이미 파괴되어 있었고 정식으로 발굴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분의 구조나 유물들의 출토상황 등에 관해서는 애매한 점이 매우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유물의 목록은 남았는데 맥락이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어디에 놓여 있었는지, 어떤 것이 관 안에 있고 어떤 것이 밖에 있었는지 — 고고학이 물건에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통로가 그것인데, 금관총에서는 그 통로가 처음부터 좁았습니다.

그래도 양은 압도적입니다. 곡옥을 포함한 각종 구슬류만 3만 점이 넘고, 금의 총량만 7.5kg입니다. 허리띠 하나만 놓고 봐도 장신구류·꾸미개류·말갖춤류·무기류·용기류 등 4만여 점의 유물과 함께 나왔습니다.

관은 두 겹이고, 바깥 것만 우리가 아는 그 모양이다

신라 금관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出자 모양 세움 장식은 외관입니다. 정면에 3단으로 出자 모양 수목형 입식 세 개, 뒤쪽 좌우에 사슴뿔 모양 장식 두 개가 섭니다. 높이 44.4cm.

사진에서 관테 아래로 늘어진 두 줄은 수식입니다. 가는 고리에 금사슬이 늘어지고, 끝에는 금모를 씌운 비취색 곱은옥이 매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금관에는 짝이 있습니다. 내관으로 생각되는 관모가 관 밖에서 발견됐고, 비슷한 예가 천마총에서도 나왔습니다. 관모 앞에는 새 날개 모양의 금판 관식을 꽂게 되어 있습니다.

그 새 날개를 백과사전은 이렇게 읽습니다. 삼국시대 사람들의 신앙을 반영한 것으로 샤머니즘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겨진다」로 적혀 있고, 그대로 두는 편이 옳습니다.

허리띠가 백제와 이어진다

허리띠 쪽이 더 말이 많습니다.

구성은 이렇습니다. 얇은 금판을 도려내 만든 띠꾸미개 40매와 17개의 허리 장식, 그리고 가장 긴 장식은 54.5cm로 끝에 금구슬 3개가 달렸습니다. 신라에서 확인된 허리띠 중 요패가 가장 많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 유물이 경주 밖으로 이어집니다.

금관총의 띠꾸미개와 똑같은 도안이 백제 웅진시기 왕족무덤인 공주 송산리 4호분에서도 출토되어, 5세기 후반 신라와 백제 사이의 교류관계를 나타냅니다.

같은 도안이 두 나라의 왕족 무덤에 있다는 것은 물건이 오갔거나, 만드는 사람이 오갔거나, 적어도 무엇이 왕족의 격에 맞는지에 대한 감각이 공유됐다는 뜻입니다. 무령왕릉을 보고 온 여행자라면 이 연결을 기억해 둘 만합니다.

🔴 금제 허리띠가 신분을 말한다는 판단도 근거가 있습니다. 금동이나 은제로 만든 허리띠와 달리 왕실급의 최고위층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실제로 이 무덤에서는 금제·금동제·은제 허리띠가 함께 수습됐습니다.

이름은 나왔는데, 그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이 무덤의 가장 최근 소식은 100년 전 발견이 아니라 21세기의 두 번입니다.

2013년 국립중앙박물관은 수장고에 보관하던 금관총 장식 대도의 칼집에 「尒斯智王(이사지왕)」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는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이어 2015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 조사단이 금관총을 다시 발굴하는 과정에서 「尒斯智王刀」라는 다섯 글자가 새겨진 칼집 조각과, 일제강점기에 미처 수습하지 못한 유물을 여러 점 더 찾아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밝혀졌는가 하면, 절반입니다.

이 발굴을 계기로 금관총에 묻힌 인물이 이사지왕이라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졌지만, 이사지왕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1921년에 파괴된 채 열린 무덤이 90여 년 뒤 수장고에서 이름 하나를 내놓았고, 그 이름은 왕의 목록 어디에도 곧바로 붙지 않습니다. 축조연대는 대략 5세기 후반으로 추정됩니다.

가서 보기

🔴 국가유산 기록이 말하는 것은 유물을 어디가 관리하는가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날 진열장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약속이 아닙니다.

국가유산 목록에서 이름에 「금관총」이 들어가는 국보는 둘이고, 둘 다 관리단체가 국립경주박물관입니다. 다만 이 무덤에서 나온 유물 전체로 보면 국립중앙박물관과 경주박물관에 분산 보관돼 있습니다. 이사지왕 칼집이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나온 것도 그래서입니다.

무덤 자리 자체도 남아 있습니다. 금관총은 현재 노서동 고분공원에 발굴된 유지가 보존되어 있고, 자리에 「금관총」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습니다. 대릉원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관람 시간과 찾아가는 길은 국립경주박물관 장소 페이지에 있습니다.

무엇을 볼 것인가

금관 앞에서는 관테 아래를 보십시오. 수식 두 줄 끝에 금모를 씌운 비취색 곱은옥이 달려 있습니다. 금 일색인 관에서 색이 다른 유일한 지점입니다.

허리띠 앞에서는 요패를 세어 보십시오. 열일곱 줄이면 신라에서 가장 많은 것이고, 그 사실 하나가 이 물건의 격을 말합니다.

이어서 볼 곳

같은 시기 다른 무덤의 국보 넷은 천마총을 다룬 글에, 금관을 왕의 수와 견주어 세는 이야기는 황남대총 금관을 다룬 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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