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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사유상: 어디서 나왔는지도, 어느 나라가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높이 93.5cm의 금동상. 한쪽 다리를 얹고 두 손가락을 뺨에 대고 있는 7세기 전반의 상입니다. 출토지는 알려져 있지 않고, 제작국은 백제와 신라로 의견이 갈립니다. 그리고 교토의 한 절에 있는 목조상이 너무 닮아서, 이 논쟁은 백 년째 두 나라를 오가고 있습니다.

10 분 읽기

언어

국립중앙박물관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 얹고 두 손가락을 뺨에 대고 있다

이름난 유물에는 대개 「어디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붙습니다. 이 상에는 없습니다.

출토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1920년대 이후에 발견되어 오랫동안 덕수궁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었습니다.

이 공백은 각주가 아닙니다. 이 상을 둘러싼 가장 큰 질문이 아직 닫히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한눈에 보기

  • 높이 93.5cm, 금동

    청동에 도금했습니다. 같은 유형의 삼국시대 상 가운데 큰 편입니다.

  • 산 셋을 얹은 관

    관의 삼면이 각각 둥근 산 모양을 이루어 삼산관반가사유상으로도 불립니다.

  • 백제인가 신라인가

    제작 국가에 대한 의견이 갈립니다. 백과사전은 그 불일치를 정리하지 않고 그대로 적습니다.

  • 7세기 전반

    연대는 기록으로 확인된 해가 아니라 폭넓은 추정입니다.

바다를 건너는 논쟁

출토지가 없으니 제작국은 유물 자체와 그것을 닮은 것들로부터 따져야 합니다.

제작 국가에 대하여는 백제와 신라라는 두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이후 두 갈래의 근거가 제시됐습니다.

하나는 국내입니다. 1966년 경상북도 봉화에서 석조여래좌상의 하반신 부분이 발견되어 — 지금은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있습니다 — 두 상의 형태와 옷주름 처리에서 유사성이 지적됐습니다. 봉화는 신라 땅입니다.

다른 하나는 국외입니다. 일본 교토 고류사의 목조반가사유상이 이 상과 매우 비슷하고, 고류사의 창시자 진하승이 신라와 문화적 교류가 있었다거나 신라에서 전해진 상이 이 절에 모셔졌다는 일본의 기록은 이 상이 백제보다 신라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높여 줍니다.

🔴 문장을 그대로 읽으십시오. 가능성을 높여 준다입니다. 판결이 아닙니다. 두 상의 닮음과 절의 창건 설화가 신라 쪽을 더 잘 받쳐 줄 뿐이고, 백과사전은 여전히 이 질문을 갈린 것으로 적습니다. 어느 나라가 만들었다고 단정해 말하는 사람은 기록보다 앞서 나간 것입니다.

이 자세가 하고 있는 일

한쪽 발목을 반대쪽 무릎에 얹고 두 손가락을 뺨에 댄 자세입니다. 이 자세에는 이름과 주인공이 있습니다. 생각에 잠긴 미륵보살입니다.

유형이 어디서 왔는지는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삼국시대의 반가사유상은 대체로 중국 동위부터 북제에 유행한 반가사유상의 형식과 양식을 반영합니다. 이 자세는 한국이 발명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무엇을 했는가입니다. 이 상은 북제의 상들보다 더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다듬어져 있고, 백과사전이 읽어 낸 솜씨는 구체적입니다. 단순하고 균형 잡힌 신체 표현, 자연스러우면서도 입체적으로 처리된 옷주름, 분명하게 조각된 눈과 코와 입입니다.

국내의 양식적 친척도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평천리 출토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의 반가사유상입니다. 이 상은 수입된 계보의 끝이 아니라 한국 안의 계보 속에 있습니다.

여기서 「국보 제83호」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

이 상은 거의 어디서나 국보 제83호로 불립니다. 그 번호는 공식 목록에서 물러났습니다.

국가유산청 목록에서 이름에 「반가사유상」이 들어가는 국보를 찾으면 정확히 셋이 나옵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4)입니다. 이름이 담고 있는 것은 번호가 아니라 연도와 일련번호입니다.

이 상이 1962-2 입니다. 흔히 78호라 불리는 상이 1962-1 이고요. 둘 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리하며, 흔히 118호라 불리는 셋째는 삼성문화재단이 관리합니다.

🔵 옛 번호가 역사로서 틀린 것은 아니고, 예전 책에서 유물을 찾을 때는 여전히 가장 빠른 열쇠입니다. 다만 지금 목록에 적힌 것이 아닐 뿐입니다. 공식 데이터베이스에서 번호로 검색했는데 아무것도 안 나온다면 이 때문입니다.

무엇을 볼 것인가

관을 먼저 보십시오. 둥근 산 모양 셋이고, 다른 이름은 거기서 나왔습니다. 그다음 손을 보십시오. 손가락이 뺨을 누르지 않고 살짝 닿아 있습니다. 그리고 옆으로 자리를 옮기십시오. 옷주름은 새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입체적으로 처리됐다고 적혀 있는데, 옆에서 보면 그 말에 동의하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볼 곳

이 상을 두고 다투는 두 나라는 삼국시대 개관에, 그 뒤 한 세기 동안 불교가 무엇이 되었는지는 통일신라의 불교에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어느 나라가 만들었나요?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백제와 신라로 의견이 갈립니다. 1966년 봉화에서 발견된 석조여래좌상과의 유사성, 그리고 교토 고류사 목조반가사유상과의 닮음이 신라 쪽 가능성을 높이는 근거로 제시되지만, 질문 자체는 열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디서 출토됐나요?

출토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1920년대 이후에 발견되어 오랫동안 덕수궁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었습니다.

왜 삼산관반가사유상이라고도 하나요?

관의 삼면이 각각 둥근 산 모양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아직 국보 제83호인가요?

국보인 것은 그대로이지만 공식 목록은 더 이상 그 번호를 쓰지 않습니다. 목록상의 이름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 곧 연도와 일련번호입니다.

어디서 볼 수 있나요?

목록은 1962-1 상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리하는 것으로 기록합니다. 이 글은 특정한 날에 무엇이 전시되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유물 하나를 보러 가신다면 박물관의 전시 안내를 먼저 확인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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