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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대왕신종: 아버지를 위해 시작했고 손자가 끝냈으며, 글을 쓴 사람의 이름은 마멸됐다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의 공덕을 알리려고 만들기 시작한 종은 그의 대에 끝나지 않았고, 아들 혜공왕 때인 771년에 완성됐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큰 종이고, 종 몸통에 새겨진 830자의 글은 종명의 효시입니다. 그 글을 지은 사람의 이름은 두 가지로 전하는데, 글자가 마멸돼 어느 쪽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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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국립경주박물관 종각에 걸린 성덕대왕신종. 몸통에 비천상과 명문이 새겨져 있고, 오른쪽에 나무 당목이 매달려 있으며, 종 아래 바닥에는 둥근 울림통 구덩이가 파여 있다

이 종은 세 임금에 걸쳐 있습니다.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완성은 혜공왕 때인 771년에 이루어졌습니다.

기리려는 사람은 할아버지, 시작한 사람은 아버지, 끝낸 사람은 아들입니다.

한눈에 보기

  • 771년 완성

    경덕왕이 시작했고 혜공왕 때 끝났습니다. 제작 연대가 확실한 종입니다.

  • 명문 830자

    630자의 서문과 200자의 명. 종에 새긴 글로서는 효시입니다.

  • 비천상 4구

    2구씩 마주보게 배치돼 있고, 연화좌 위에 무릎을 세우고 공양하는 자세입니다.

  • 1915년에 옮겨 왔다

    봉황대의 종각과 함께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박물관이 신축 이전하면서 지금 자리로 왔습니다.

글을 지은 사람의 이름이 두 가지로 전한다

이 종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은 소리지만, 기록이 가장 분명하게 남긴 것은 글입니다.

이 동종의 명문은 종명의 효시일 뿐만 아니라 문장면에서도 지극히 뛰어난 것입니다. 구성은 630자로 된 서문과 200자로 된 명입니다.

그리고 이 대목이 남습니다.

지은 사람은 신라 혜공왕 때 한림랑급찬인 김필계라고도 하고 김필오라고도 하나, 글자가 마멸되어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830자를 남긴 사람의 이름 두 글자가 닳아 없어졌습니다. 이 종이 「기억을 위한 물건」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가 꽤 깊습니다 — 성덕왕의 공덕을 영원히 남기려고 부은 쇠가 정작 그 글을 쓴 사람은 놓쳤습니다.

서문의 주제는 분명합니다. 종소리를 통해 성덕왕의 공덕이 널리 그리고 영원히 나라의 민중들에게 흘러 퍼지게 해서 국태민안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발원입니다.

종의 입이 둥글지 않다

사진에서 종 아랫단을 보십시오. 원이 아닙니다.

구연대는 종구가 팔능형을 이룬 특수한 형태를 갖추고 있고, 이 팔능형의 윤곽이 되는 능마다 당좌와 유사한 대형 연화를 배치한 것이 또한 특징입니다.

즉 종의 입이 여덟 모로 물결치고, 그 모서리마다 큰 연꽃이 하나씩 놓여 있습니다. 여덟 번 반복되는 이 리듬을 한 번 알아보고 나면 종을 도는 동안 계속 눈에 들어옵니다.

위쪽 구조도 셈이 됩니다. 견대 밑 네 곳에 유곽을 둘렀고, 그 안에 돋을새김 연화로 표현된 유두가 9개씩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종신에 비천상 2구를 서로 마주보게 배치하고, 그 사이에 8판의 연화당좌 2개를 어긋나게 배치했습니다.

신라 종에서 흔치 않은 것: 글이 몸통에 있다

같은 통일신라 범종을 대표하는 상원사 동종과 이 종을 갈라놓는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상원사동종의 명문이 동종의 정상부인 천판에 명기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종신에 장문의 명문이 돋을새김되어 있는 것은 신라동종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징입니다.

이 차이는 관람 동선에도 영향을 줍니다. 천판의 글은 올려다봐도 보이지 않지만, 종신의 글은 서서 볼 수 있는 높이에 있습니다. 사진에서 비천상 사이로 보이는 네모난 판이 그것입니다.

비천상 자체도 평가가 높습니다. 종신에 2구씩 마주보는 4구의 비천상은 연화좌 위에 무릎을 세우고 공양하는 상으로, 주위에 보상화를 구름처럼 피어오르게 하고 천의와 영락이 휘날립니다. 백과사전은 이것을 한국 비천상의 대표가 되는 조각수법으로 적습니다.

종은 네 번 자리를 옮겼다

지금 국립경주박물관 경내에 있는 것은 이 종의 첫 자리가 아닙니다. 옮긴 순서가 기록돼 있습니다.

  1. 봉덕사에 달았습니다.
  2. 수해로 폐사된 뒤 영묘사로 옮겼습니다.
  3. 다시 봉황대에 종각을 짓고 보호했습니다.
  4. 1915년 8월에 종각과 함께 박물관으로 옮겼고, 국립경주박물관이 신축 이전됨에 따라 이 동종도 지금의 경내로 이전됐습니다.

🔵 3번과 4번 사이가 특히 눈에 띕니다. 옮긴 것이 종만이 아니라 종각과 함께였습니다. 지금 사진에서 종을 덮고 있는 지붕은 그때 그 구조물은 아니지만, 이 종이 「건물과 한 벌로 다뤄져 왔다」는 사실은 백 년 전부터입니다.

이 종의 다른 이름 둘도 그 이력에서 나옵니다. 일명 봉덕사종·에밀레종이라고도 합니다. 앞의 것은 처음 걸렸던 절 이름입니다.

가서 보기

국가유산 기록은 소재지를 경북 경주시 일정로 186,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적습니다. 관리단체도 국립경주박물관입니다.

🔵 이 유물에 한해서는 「가는 날 진열장에 있을까」를 덜 걱정해도 됩니다. 이 종은 전시실 안 진열장이 아니라 박물관 경내의 종각에 걸려 있고, 크기 때문에 옮기기도 어렵습니다 —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최대의 거종입니다. 다만 종각 주변 정비나 보존 처리로 접근이 제한될 수는 있으니, 이 종 하나를 보러 가신다면 박물관 공지를 한 번 확인하십시오.

관람 시간과 찾아가는 길은 국립경주박물관 장소 페이지에 있습니다.

무엇을 볼 것인가

종 아래 바닥을 보십시오. 둥근 구덩이가 파여 있습니다. 그다음 종의 입 가장자리를 따라 한 바퀴 도십시오 — 여덟 모로 물결치고 모서리마다 큰 연꽃이 하나씩 있습니다.

그리고 비천상 사이의 네모난 글판 앞에서 잠깐 서 보십시오. 630자와 200자입니다. 그 글을 지은 사람의 이름은 김필계일 수도 김필오일 수도 있고, 글자가 닳아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어서 볼 곳

같은 박물관이 관리하는 신라 고분 국보들은 천마총을 다룬 글금관총을 다룬 글에, 통일신라의 불교는 통일신라 불교를 다룬 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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