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왜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나
천도는 건국과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1394년의 어떤 사건 뒤에야 결정되었고, 그 뒤 2년 동안 무엇을 지었는지가 지금 서울의 도심 배치를 그대로 설명합니다.
언어

서울 도심을 걷다 보면 궁궐과 종묘, 사직단이 서로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안에 있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그 배치는 1394년부터 2년 동안 한 번에 계획되어 지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의 건국은 1392년이고, 천도는 1394년입니다. 2년의 간격이 있습니다. 그 간격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이 글의 내용입니다.
한눈에 보기
건국은 1392년, 천도는 1394년
새 왕조는 곧바로 수도를 옮기지 않았습니다.
천도는 숙청 뒤에 결정되었습니다
백과사전은 '한양 천도 또한 이러한 일을 겪은 뒤에야 결정되었다'고 적습니다.
1394년 9월부터 약 2년
국력을 기울여 종묘와 사직, 궁궐과 여러 관아, 도성을 짓는 공사가 이어졌습니다.
공사 중에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 중간에 한양부는 이름을 한성부로 바꾸었습니다.
천도가 늦어진 2년 사이에 있었던 일
새 왕조는 개경에서 출발했고, 곧바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백과사전은 그 사이의 상황을 이렇게 적습니다.
건국을 반대한 세력에 대한 숙청이 있었지만, 이성계의 권위를 부인하거나 깎으려는 언행은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1394년(태조 3), 일부 관원이 새 왕조의 운명을 점친 일이 드러나고 이어서 고려 왕족 일부가 반란을 꾀한 혐의를 잡게 되자, 공양왕과 그 아들들은 물론이고 고려 왕족 전체를 찾아내 소수를 제외한 나머지를 모두 살해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 문장 바로 뒤에 이 한 줄이 옵니다. "한양 천도 또한 이러한 일을 겪은 뒤에야 결정되었다."
이 순서가 답의 절반입니다. 천도는 새 수도를 갖고 싶다는 계획의 실행이라기보다, 옛 왕조의 근거지에서 벗어나는 문제가 해결된 뒤에 나온 결정이었습니다. 개경은 고려의 수도였고, 고려 왕족과 그에 얽힌 세력의 터전이었습니다.
2년 동안 무엇을 지었나 — 지금 서울의 뼈대
결정이 나자 공사는 한꺼번에 진행되었습니다.
1394년 9월부터 약 2년 동안 국력을 기울여 한양에 종묘와 사직, 궁궐과 여러 관아, 도성을 짓는 공사가 이어졌습니다.
이 목록의 순서를 그대로 읽으면 지금 서울 도심이 설명됩니다.
- 종묘 —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곳
- 사직 —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하는 곳
- 궁궐 — 왕이 거처하고 정무를 보는 곳
- 관아 — 국가를 운영하는 관청
- 도성 — 이 전체를 두르는 성곽
종묘와 사직이 궁궐보다 앞에 나온다는 점이 이 왕조의 성격을 말해 줍니다. 국가의 정통성을 세우는 시설이 먼저이고, 통치자의 거처는 그다음입니다. 지금도 경복궁을 기준으로 종묘는 동쪽, 사직단은 서쪽에 있습니다.
공사 중에 행정 단위의 이름도 바뀌었습니다. 그 중간에 한양부는 이름을 한성부로 바꾸었습니다.
여행자에게 이 이야기가 쓸모 있는 이유
서울 도심의 관광지들이 왜 그렇게 가까이 붙어 있는지가 이 대목에서 설명됩니다.
경복궁에서 종묘까지, 종묘에서 창덕궁까지, 그리고 그 전체를 두르는 성곽까지 —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이유는 애초에 하나의 계획으로 한 번에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도시가 자라면서 우연히 모인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서울의 역사 일정은 지도상의 거리보다 의미의 순서로 짜는 편이 낫습니다. 궁궐 하나를 보고 종묘를 보면, 살아 있는 자의 공간과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이 어떻게 한 도시 안에 배치되었는지가 그대로 보입니다.
성곽은 지금도 능선을 따라 남아 있습니다. 이 도시가 어디까지였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한양의 계획이 남아 있는 곳
자주 묻는 질문
조선은 언제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나요?
천도는 1394년에 결정되었고, 그해 9월부터 약 2년 동안 종묘와 사직, 궁궐과 관아, 도성을 짓는 공사가 이어졌습니다.
왜 건국하자마자 옮기지 않았나요?
백과사전은 1394년 고려 왕족 전체를 대상으로 한 숙청을 서술한 뒤 '한양 천도 또한 이러한 일을 겪은 뒤에야 결정되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새 왕조의 권위를 둘러싼 불안정이 먼저 정리되어야 했습니다.
무엇을 먼저 지었나요?
기록의 순서는 종묘와 사직, 그다음이 궁궐과 여러 관아, 그리고 도성입니다. 국가의 정통성을 세우는 시설이 통치자의 거처보다 앞에 놓였습니다.
'한양'과 '한성'은 다른 곳인가요?
같은 곳입니다. 공사가 진행되던 중간에 한양부가 한성부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 계획을 지금도 볼 수 있나요?
네. 경복궁과 종묘, 그리고 능선을 따라 남은 한양도성이 그 계획의 뼈대입니다. 서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도 한 번에 계획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변 맛집
여행 가이드
관련 글
마지막 확인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