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 탑 셋에 금당 셋, 그리고 콘크리트를 걷어내는 데 걸린 104년
백제의 절은 대개 탑 하나에 금당 하나였습니다. 미륵사는 셋씩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쪽 석탑은 1915년에 일본인들이 무너진 부분에 콘크리트를 덧씌운 상태로 전해지다가 2019년에야 보수정비가 최종 마무리되었습니다.
언어

절터를 볼 때 가장 먼저 세어야 할 것은 탑의 개수입니다. 개수가 그 절의 사상을 말합니다.
백제의 절은 대개 1탑 1금당이었습니다. 미륵사는 3탑 3금당이었습니다. 이 숫자 하나가 미륵사를 다른 모든 백제 절과 구별합니다.
관람 정보와 위치는 미륵사지의 장소 페이지에 있습니다. 이 글은 왜 셋이었고, 서탑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다룹니다. 남은 백제 석탑의 나머지 하나는 정림사지에 있습니다.
한눈에 보기
3탑 3금당
전형적인 1탑1금당의 백제식 가람배치와 달리 세 개의 탑과 금당 등으로 구성된 독특한 배치입니다.
가장 크고 가장 이르다
서쪽 석탑은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창건시기가 명확히 밝혀진 석탑 중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되었습니다.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
원래는 9층으로 추정되나 반파된 상태로 6층 일부까지만 남아 있었고, 남은 높이는 약 14.2m입니다.
1915년 콘크리트, 2019년 마무리
1915년 일본인들이 무너진 부분에 콘크리트를 덧씌운 상태로 전해졌고, 보수정비는 2019년에 최종 마무리되었습니다.
연못을 메우고 지었다는 이야기
창건 설화가 남아 있고, 그 설화가 배치를 설명합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백제 무왕 때 왕이 왕비와 사자사에 가던 도중 용화산 밑의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였는데, 왕비의 부탁에 따라 이 연못을 메우고 3곳에 탑, 금당, 낭무를 세웠다고 합니다.
「3곳」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셋이라는 숫자가 설화에 이미 들어 있고, 발굴된 배치가 그 숫자와 맞습니다. 절의 배치는 동·서로 석탑이 있고 중간에 목탑이 있으며 탑 뒤에는 부처를 모시는 금당이 각각 자리하고, 이것이 복도로 구분되어 매우 특이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습니다.
미륵삼존이 셋이므로 절도 셋으로 지었다는 것이 가장 단순한 읽기입니다. 나란한 세 절이 회랑으로만 나뉜 채 한 담장 안에 있는 셈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미륵사는 백제 무왕 때 지어져 조선시대에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닥에 빈 공간이 있다
발굴이 알려 준 것 가운데 사소해 보이지만 재미있는 사실이 둘 있습니다.
금당의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고 바닥에는 빈 공간이 있는데, 이것은 바닥마루의 습기에 대비한 것으로 봅니다. 마루 밑을 띄운 것입니다. 7세기의 건물이 습기를 어떻게 다뤘는지가 바닥 구조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고려·조선시대 건물터에서 온돌시설이 발견되어 온돌의 발전과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백제 절터인데 온돌은 백제 것이 아닙니다. 절이 조선시대에 폐사될 때까지 계속 쓰였고, 쓰인 시대마다 바닥을 다시 깔았다는 뜻입니다.
서탑, 그리고 104년
이 절터의 이야기는 대부분 서쪽 석탑 하나에 몰려 있습니다.
이 미륵사지 석탑은 세 개의 탑 중 서쪽에 위치한 탑입니다.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창건시기가 명확하게 밝혀진 석탑 중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것입니다.
원래는 9층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반파된 상태로 6층 일부까지만 남아 있었습니다. 남아 있던 6층까지의 높이는 약 14.2m이고, 상·하 이층으로 구성된 기단의 전체 폭은 약 12.5m입니다.
그리고 이 탑이 20세기에 어떤 상태로 있었는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건 당시의 정확한 원형은 알 수 없으며, 17~18세기 이전 1층 둘레에 석축이 보강되고 1915년 일본인들이 무너진 부분에 콘크리트를 덧씌운 상태로 전해졌습니다.
무너진 뒤쪽을 시멘트로 보강하였던 것을 2019년에 최종적으로 보수정비를 마무리하였습니다.
1915년에서 2019년까지 104년입니다. 지금 이 탑을 보러 가는 사람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석탑을 한 세기 만에 콘크리트 없이 보는 첫 세대에 속합니다.
돌을 나무처럼 다뤘다
가까이서 보면 이 탑이 왜 「목조건축의 기법을 사용하여 만들었다」고 설명되는지 보입니다.
1층은 각 면이 3칸으로 구성되고 가운데 칸에는 문을 내달아 계단을 통해 사방으로 통하게 하였습니다. 탑에 문이 있고 사람이 지나갈 수 있습니다. 실루엣이 탑인데 구조는 건물입니다.
기둥석은 아래가 넓고 위가 좁은 민흘림기법과 양 끝 모서리를 약간 높인 귀솟음기법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기둥석 하부에는 목조건물에서처럼 별도의 초석이 있고,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상·하 인방석과 기둥 상부에 평방석, 포벽석 등이 구성되었습니다.
목조 건물의 부재 이름이 그대로 나옵니다. 초석, 인방, 평방, 포벽 — 나무로 짓던 것을 돌로 옮기면서 이름까지 옮겼습니다. 옥개부는 목조건물의 지붕처럼 모서리 끝이 살짝 치켜 올라가고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가는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탑은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로 지정되었고, 백제시대 후기 7세기의 것입니다.
동탑과 헷갈리지 않는 법
현장에서 반드시 알아 둘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 절터에는 탑이 두 기 서 있고, 둘은 완전히 다른 물건입니다.
서쪽에 있는 것이 국보인 미륵사지 석탑입니다. 넓고 낮고, 돌빛이 고르지 않으며, 여섯 층에서 끊깁니다. 동쪽에 있는 것은 20세기에 세운 복원 탑으로, 희고 가늘고 9층까지 올라가며 꼭대기에 금속 상륜이 있습니다.
사진을 찍고 나중에 「미륵사지 석탑」이라고 이름을 붙일 때 둘을 바꿔 다는 일이 흔합니다. 구별법은 간단합니다 — 층수를 세고, 꼭대기를 보세요.
이 자리는 1966년 6월 22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2015년에는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여덟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고, 유네스코는 익산의 왕궁리 왕궁과 미륵사를 제2의 사비 도읍에 딸린 것으로 묶습니다.
서탑 1층의 가운데 칸을 들여다보세요. 문이 있고 계단이 있고 사방으로 통합니다. 탑을 「지나갈 수 있는 건물」로 만든 이 구조가, 이 탑이 왜 석탑의 시작에 놓이는지를 한 번에 설명합니다. 그 다음에 정림사지의 오층석탑을 보면 백제 석탑이 어디로 갔는지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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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왜 탑이 셋이었나요?
『삼국유사』는 미륵삼존이 출현한 뒤 왕비의 부탁으로 연못을 메우고 3곳에 탑과 금당과 낭무를 세웠다고 전합니다. 발굴된 배치도 동·서 석탑과 가운데 목탑, 그리고 탑마다 금당이 딸린 3탑3금당입니다.
서탑은 원래 몇 층이었나요?
원래 9층으로 추정되나 반파되어 6층 일부까지만 남아 있었습니다. 남아 있던 높이는 약 14.2m입니다.
콘크리트는 언제 씌워졌고 언제 걷혔나요?
1915년에 일본인들이 무너진 부분에 콘크리트를 덧씌웠고, 보수정비는 2019년에 최종 마무리되었습니다.
동쪽에 서 있는 흰 탑은 무엇인가요?
국보인 서탑과 다른, 20세기에 세운 복원 탑입니다. 서탑은 여섯 층에서 끊기고 돌빛이 고르지 않으며, 동탑은 9층까지 올라가고 꼭대기에 금속 상륜이 있습니다.
백제 절터인데 왜 온돌이 나오나요?
온돌시설은 고려·조선시대 건물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절은 조선시대에 폐사될 때까지 계속 쓰였고, 그래서 온돌의 발전과정을 연구하는 자료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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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확인일:
공식 출처
- 사실 확인: 국가유산포털 — 사적 익산 미륵사지 (1966년 6월 22일 지정,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32-2번지, 관리 익산시; 『삼국유사』에 무왕이 왕비와 사자사로 가던 중 용화산 밑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해 연못을 메우고 3곳에 탑·금당·회랑을 세웠다는 기록; 동·서에 석탑, 중간에 목탑, 탑 뒤에 각각 금당이 있고 복도로 구분되는 배치; 금당은 앞면 5칸·옆면 4칸이고 바닥에 빈 공간; 고려·조선시대 건물터에서 온돌시설 발견; 조선시대에 폐사; 무너진 뒤쪽을 시멘트로 보강했던 것을 2019년에 최종 보수정비 마무리)
- 사실 확인: 국가유산포털 — 국보 익산 미륵사지 석탑 (1962년 12월 20일 지정, 1기, 백제시대 후기 7세기; 3탑3금당 가운데 서쪽 탑;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창건시기가 명확한 것 중 가장 이른 시기; 원래 9층으로 추정되나 반파되어 6층 일부까지만 남음; 17~18세기 이전 1층 둘레에 석축 보강, 1915년 일본인들이 무너진 부분에 콘크리트를 덧씌움; 남아 있던 6층까지 높이 약 14.2m, 상·하 이층 기단 전체 폭 약 12.5m; 1층은 각 면 3칸이고 가운데 칸에 문을 내어 계단으로 사방 통행; 민흘림기법과 귀솟음기법)
- 사실 확인: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 백제역사유적지구(1477). 475~660년의 고고 유적 여덟 곳으로 구성되며, 익산의 왕궁리 왕궁과 미륵사가 제2의 사비 도읍에 딸린다고 명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