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림사지
사비 백제의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다. 절은 없어졌고 백제 때 세운 오층석탑과 고려 때 만든 석불좌상이 남아, 중문에서 탑과 금당을 지나 강당에 이르는 남북 축이 빈 땅 위에 그대로 읽힌다.
언어

장소 정보
- 주소
-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254번지
역사
538~660년
사비 백제의 중심 사찰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시기의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입니다.
1028년
이름이 확인되는 기와
발굴조사 때 강당터에서 나온 기와에서 「태평 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라는 글이 발견되어, 고려 현종 19년 당시 이곳을 정림사로 불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람 배치
남북 일직선, 그리고 사다리꼴 회랑
중문, 오층석탑, 금당, 강당이 남북 일직선 축 위에 놓이고 복도가 건물을 감쌉니다. 다만 중심부를 두른 복도가 정사각형이 아니라 북쪽 간격이 넓은 사다리꼴 평면입니다.
1983년 3월 26일
사적 지정
면적 61,449㎡로 사적에 지정되었습니다.
1993년
석불좌상 보호 건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불좌상을 보호하기 위한 건물이 세워졌습니다.
2015년
세계유산 등재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이루는 여덟 곳 가운데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볼거리
오층석탑
백제 때 세운 석탑이 절터 가운데 남아 있다. 절이 사라진 자리에서 축의 위치를 알려 주는 것이 이 탑이다.
석불좌상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불좌상이다. 백제 절터 위에 고려가 다시 지은 층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오층석탑 선택됨
함께 둘러보기

국립부여박물관
사비 백제의 유물을 모은 국립박물관이다. 백제금동대향로를 위한 전시실을 따로 두고 있다.

부소산성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이다. 사비로 도읍을 옮긴 뒤 왕궁을 지킨 성이고,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수도를 방어한 자리다. 성 안에 낙화암과 고란사가 있다.
부여 나성
사비 도읍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둘레 8㎞의 성이다. 부소산성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자연지형을 이용해 부여 시가지 외곽을 둘러싼다. 흙으로 쌓은 성벽이어서 지금은 약간의 흔적만 남아 있다.
부여 왕릉원
능산리산 남쪽 경사면에 백제 무덤 일곱 기가 앞뒤 두 줄로 놓여 있다. 오래 전부터 왕릉으로 알려져 온 곳이고, 무덤 서쪽 절터에서 나온 유물이 이곳이 왕실 무덤 지역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시켰다. 유네스코는 「능산리 고분군」이라는 이름으로 싣고, 국가유산청이 쓰는 현행 명칭은 부여 왕릉원이다.
이 장소의 이야기
- 정림사지: 절이 사라진 자리에서 탑 하나가 축을 지키고 있다
정림사지에는 절이 없습니다. 남은 것은 백제 때 세운 오층석탑과 고려 때 만든 석불좌상뿐입니다. 그런데 그 탑의 위치 덕분에 중문에서 금당을 지나 강당에 이르는 남북 축이 빈 땅 위에 그대로 읽힙니다. 그리고 이 탑에는 정복자가 새긴 글귀 때문에 붙었던 잘못된 이름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