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산성: 성 하나가 궁성이자 유원지이자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부소산성은 군사 시설로만 읽으면 절반을 놓칩니다. 성 안에 군창터가 있고 동시에 정자와 절과 절벽이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왕과 귀족이 백마강을 내려다보던 곳이었고, 유사시에는 사비를 지키는 마지막 자리였습니다.
언어

「산성」이라는 말은 오해를 부릅니다. 벽과 화살과 포위를 떠올리게 하는데, 부소산성 안에 실제로 남아 있는 것은 창고 터와 정자와 절과 절벽입니다.
이 성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했습니다. 그리고 그 두 가지가 한 울타리 안에 있었다는 사실이, 사비 시기의 백제가 어떤 나라였는지를 공산성보다 잘 보여 줍니다.
관람 정보와 위치는 부소산성의 장소 페이지에 있습니다. 이 글은 이 성이 언제 어떻게 지금 모습이 되었고, 성 안의 것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를 다룹니다. 이전 도읍의 성은 공산성에 있습니다.
한눈에 보기
백마강 남쪽 부소산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으로, 사비시대의 도성입니다.
이름은 산에서 왔다
『삼국사기』에는 사비성·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고, 부소산성이라는 이름은 성이 앉은 산의 이름을 따른 것입니다.
500년경에서 605년경으로
동성왕 22년(500)경 이미 테뫼식 산성이 있었고, 무왕 6년(605)경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으로 짐작합니다.
관북리 유적과 한 구성요소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에서 부소산성과 관북리 유적은 함께 한 구성요소를 이룹니다.
성이 한 번에 지어지지 않았다
연대를 두 개로 나눠 보면 이 성이 훨씬 잘 읽힙니다.
웅진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기던 백제 성왕 16년(538)에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이중의 성벽을 쌓은 것으로 봅니다. 이것이 도읍을 옮기면서 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 전에도 있었습니다. 동성왕 22년(500)경에 이미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 있던 것을, 무왕 6년(605)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한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래서 이 성은 백제 성곽 발달사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한 산에 세 시점의 공사가 겹쳐 있고, 겹친 방식이 형식으로 남아 있습니다.
성곽의 형식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빙 둘러싼 테뫼식과 다시 그 주위를 감싸게 쌓은 포곡식이 혼합된 복합식 산성입니다. 정상만 두르던 성 바깥으로 계곡까지 감싸는 성이 한 겹 더 생긴 모양이고, 그 두 겹이 곧 두 시기입니다.
군창터와 정자가 같은 울타리 안에 있다
성 안에 남은 것의 목록이 이 자리의 성격을 말합니다.
성 안에는 군창터 및 백제 때 건물터와 영일루·사비루·고란사·낙화암 등이 남아 있습니다.
군창터는 군량을 쌓아 두던 자리입니다. 낙화암은 강을 내려다보는 절벽이고, 고란사는 절이며, 영일루와 사비루는 정자입니다. 한쪽은 포위를 준비하는 시설이고 다른 쪽은 경치를 보는 시설입니다.
국가유산청은 이 조합을 이렇게 읽습니다. 성 안에 군창터와 건물터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사시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백마강과 부소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용하여 왕과 귀족들이 즐기던 곳으로 쓰인 듯합니다.
이것이 사비 백제와 웅진 백제의 차이입니다. 공산성은 물러설 곳을 확보한 성이었고, 부소산성은 물러설 필요가 없다고 여기던 시기에 왕궁 뒤에 둔 산이었습니다.
문 넷과 물이 빠지는 자리
동·서·남문터가 남아 있으며, 북문터에는 금강으로 향하는 낮은 곳에 물을 빼는 수구가 있던 것으로 봅니다.
수구는 사소해 보이지만 성의 구조를 알려 줍니다. 계곡을 안에 넣고 감싸는 성은 안에 물이 고이므로 반드시 빼야 하고, 물이 빠지는 방향이 그 성이 어느 쪽을 낮게 두었는지를 말합니다. 여기서는 북쪽, 강 쪽입니다.
낙화암, 그리고 이름의 무게
성 안에서 가장 많이 찾는 자리는 성벽이 아니라 절벽입니다.
낙화암은 성 안에 남아 있는 것 가운데 하나이고, 부소산 북쪽에서 백마강을 내려다보는 바위입니다. 위에는 육각 정자 백화정이 서 있고, 그 아래로 바위가 강으로 떨어집니다.
여기에는 사비성이 함락될 때의 전설이 붙어 있고, 그 전설이 이름이 되었습니다. 다만 이 글은 전설을 사실로 옮기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이것입니다 — 이 산성은 사비시대의 중심 산성으로서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수도를 방어한 곳입니다.
절벽에 서면 그 문장이 지형으로 이해됩니다. 강이 산을 감아 돌고, 성은 그 안쪽에 있고, 뒤는 없습니다.
숫자 둘
이 자리는 1963년 1월 21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면적은 1,022,558㎡입니다. 공산성의 약 2.7배이고, 걸어서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만큼 다릅니다.
2015년에는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여덟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다만 부소산성은 홀로가 아니라 관북리 유적과 묶여 한 구성요소를 이룹니다. 관북리는 산 아래 왕궁 관련 시설이 있던 자리이고, 산과 산 아래를 한 단위로 본 것입니다.
북쪽 낙화암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군창터를 일부러 찾아보세요. 절벽과 정자만 보고 내려오면 이 성이 유원지처럼 기억되는데, 창고 터를 보고 나면 같은 산이 다르게 읽힙니다. 두 시설이 같은 울타리 안에 있다는 것이 이 자리의 요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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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부소산성은 언제 지어졌나요?
한 번에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동성왕 22년(500)경에 이미 산 정상을 두른 테뫼식 산성이 있었고, 538년 사비 천도 때 왕궁 수호를 위해 이중 성벽을 쌓았으며, 무왕 6년(605)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한 것으로 짐작합니다.
『삼국사기』에도 이 이름으로 나오나요?
아니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사비성·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소산성이라는 이름은 성이 앉은 산의 이름을 따른 것입니다.
성 안에 무엇이 남아 있나요?
군창터와 백제 때 건물터가 있고, 영일루·사비루·고란사·낙화암이 남아 있습니다.
군사 시설인가요, 정원인가요?
둘 다로 봅니다. 유사시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쓰고, 평상시에는 백마강과 부소산의 경관을 이용해 왕과 귀족들이 즐기던 곳으로 쓰인 듯하다는 것이 국가유산청의 설명입니다.
세계유산 구성요소가 부소산성 하나인가요?
아닙니다. 백제역사유적지구에서 부소산성은 관북리 유적과 묶여 한 구성요소를 이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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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확인일:
공식 출처
- 사실 확인: 국가유산포털 — 사적 부여 부소산성 (1963년 1월 21일 지정, 면적 1,022,558㎡, 충남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31;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사비시대의 도성;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사비성·소부리성으로 기록; 백제 성왕 16년(538) 수도를 옮기던 시기에 왕궁 수호를 위해 이중 성벽을 쌓은 것으로 봄; 동성왕 22년(500)경 이미 테뫼식 산성이 있었고 무왕 6년(605)경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으로 짐작; 테뫼식과 포곡식이 혼합된 복합식 산성; 동·서·남문터가 남고 북문터에 수구; 성 안에 군창터와 백제 건물터, 영일루·사비루·고란사·낙화암; 평상시에는 왕과 귀족이 경관을 즐기던 곳으로 쓰인 듯함)
- 사실 확인: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 백제역사유적지구(1477). 475~660년의 고고 유적 여덟 곳으로 구성되며, 부소산성과 관북리 유적은 사비 도읍에 딸린 한 구성요소라고 명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