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
금강 남쪽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산성이다. 백제가 웅진에 도읍했던 동안의 도성이었고, 그 뒤로도 조선시대까지 지방 행정의 중심에 있었다. 본래 토성이었던 것을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쳤다.
언어

장소 정보
- 주소
- 충남 공주시 산성동 2번지
역사
538년까지
웅진 백제의 도성
백제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백제의 도성이었습니다. 백제 때에는 웅진성이라 불렀습니다.
660년
멸망 직후, 그리고 부흥운동
백제 멸망 직후 의자왕이 이곳에 잠시 머물렀고, 이후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822년
김헌창의 난
통일신라 시기에 이곳에서 김헌창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1623년
이괄의 난과 인조의 피난
조선시대 이괄의 난으로 인조가 이곳으로 피난했습니다. 인조 이후로는 쌍수산성이라 불렀습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지정
면적 376,645.3㎡로 사적에 지정되었습니다.
1993년
동문·서문 복원
터만 남아 있던 동문터에 영동루를, 서문터에 금서루를 복원했습니다.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는 남아 있던 것입니다.
2015년
세계유산 등재
백제역사유적지구를 이루는 여덟 곳 가운데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국가유산포털 — 사적 공주 공산성 (1963년 1월 21일 지정, 376,645.3㎡, 충남 공주시 산성동 2번지, 관리 공주시) ·
볼거리
공북루
북문의 문루다. 성문을 나서면 나루를 통해 금강을 건너게 되어 있어, 이 성이 강을 등지고 있었다는 것이 문 하나로 설명된다.
토성에서 석성으로
동서 약 800m, 남북 약 400m의 장방형이다.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고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쳤으므로, 지금 걷는 성벽은 백제의 것과 조선의 것이 이어져 있다.
공북루 선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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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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