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금관: 금관은 왕비의 무덤에서 나왔고, 왕의 무덤에서는 금동관이 나왔다
경주 시내 고분에서 지금까지 나온 금관은 여섯 점인데, 그 무덤들이 만들어진 시기의 신라왕은 넷뿐입니다. 황남대총 북분의 금관은 주검의 머리에 씌워진 그대로 발굴됐고, 그 옆 왕의 무덤에서는 금동관이 나왔습니다. 높이 27.5cm, 얇은 금판을 오려 만들어 오래 쓰고 있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언어

금관을 세어 보고, 왕을 세어 보십시오.
경주 시내 고분에서 지금까지 나온 금관은 여섯 점이고, 그 무덤들은 대체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만들어졌는데 그 시기의 신라왕은 넷입니다.
금관 여섯에 왕 넷. 셈이 맞지 않고, 어긋나는 방식이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한눈에 보기
높이 27.5cm
관테 아래로 늘어뜨린 수하식의 길이는 13cm에서 30.3cm입니다.
머리에 씌워진 그대로
왕비 무덤에서는 주검의 머리 부분에 씌워진 원형 그대로 금관이 출토됐습니다.
나무와 사슴뿔
관테 위에 나뭇가지 모양과 사슴뿔 모양 장식을 세웁니다. 천상과 지상을 잇는 나무와 사슴의 상징입니다.
소재지는 서울
국가유산 기록은 소재지를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적습니다.
금은 여자의 무덤에 있었다
황남대총은 쌍분입니다. 두 무덤이 잇대어져 길이가 120여 m — 현재 확인된 고신라 무덤 가운데 가장 큽니다.
그런데 두 쪽의 부장품이 같지 않습니다.
북분은 「婦人帶」라는 명문이 있는 금제 허리띠 때문에 여성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남분인 왕의 무덤에서는 오히려 금동관이 발견됐습니다. 왕의 무덤에서 나온 것은 금동판을 오려 만든 관 다섯 점이었습니다. 금관은 왕비 쪽에 있었습니다.
이 뒤집힘을 붙들고 읽어야 합니다. 「금관은 왕이 쓰는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독법이, 왕과 왕비를 나란히 놓고 비교할 수 있는 유일한 무덤에서 어긋납니다. 게다가 금관은 계속 예상 밖의 자리에서 나옵니다. 금령총은 15세를 전후한 아이의 무덤인데도 화려한 금관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백과사전의 결론도 셈에서 나옵니다. 왕보다 금관이 많다는 것은 금관이 왕뿐 아니라 왕비나 가족에게도 쓰였다는 뜻입니다. 신라에서 금관은 직책이 아니라 신분을 표시했습니다.
나무와 사슴, 그리고 바깥에서 온 것
신라 금관의 형태는 한 번 익히면 박물관을 도는 내내 알아볼 수 있습니다.
둥근 관테 위에 나뭇가지 모양과 사슴뿔 모양 장식을 덧붙여 세웁니다. 이 금관의 세움 장식은 出자 모양이고, 왕비의 금관은 지금까지 출토된 出자 모양 금관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 형태가 뜻하는 바는 장식이 아닙니다. 나무와 사슴은 천상과 지상을 잇는 매개체로 읽히고, 그 발상의 기원은 북방 유목민족 샤먼이 쓰던 관에서 찾아지는 외래적 요소입니다. 신라는 북쪽과 서쪽으로 이어진 길의 끝에 있었고, 왕실의 머리 장식은 그 길이 눈에 보이는 자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관테에는 태아를 상징하는 굽은 옥과 열매를 상징하는 달개가 달려 있습니다. 태어남과 거둠을 머리에 얹은 셈입니다.
쓰고 다닐 수는 없었을 것이다
유물을 보는 눈을 바꾸는 문장은 이것입니다.
여러 겹의 얇은 금판을 오려 만들었기 때문에 실제로 머리에 쓰고 활동하기에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그렇게 보인다」로 적혀 있고, 그대로 두는 편이 옳습니다. 금관이 무엇에 쓰였는지 적어 놓은 신라의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질문의 방향은 바뀝니다. 살아서 편히 쓸 수 없는 물건이 죽은 이의 머리에 씌워진 채 발견됐다면, 그것은 왕좌에서 무덤으로 옮겨진 물건이라기보다 무덤을 위해 만들어진 물건일 가능성이 적어도 그만큼은 됩니다.
단서는 세움 장식입니다. 얇은 판을 오려 세우고, 흔들리는 옥과 달개를 잔뜩 달았습니다. 앞에서 보고 빛을 받으라고 만든 물건이지, 하루를 버티라고 만든 물건이 아닙니다.
여섯 점은 한곳에 있지 않다
여행 계획에서는 이 점이 중요합니다.
국가유산청 목록에서 이름에 「금관」이 들어가는 국보는 다섯 건인데, 금관총 금관과 천마총 금관은 국립경주박물관이,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은 삼성문화재단이, 황남대총 북분 금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리합니다.
그러니까 신라 금관을 보려면 최소한 두 도시를 가야 하고, 이 글의 사진에 있는 것은 서울 쪽입니다. 국가유산 기록은 그 소재지를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적습니다.
🔴 그 기록이 말하는 것은 유물을 어디가 소장하는가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날 진열장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약속이 아닙니다. 박물관 전시는 교체되고, 이 글은 그 이상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유물 하나를 보러 일부러 가신다면 박물관의 전시 안내를 먼저 확인하십시오.
관람 시간과 찾아가는 길은 국립중앙박물관 장소 페이지에, 건물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는 박물관 자체를 다룬 글에 있습니다.
무엇을 볼 것인가
관테를 먼저 찾고 위로 읽어 올라가십시오. 앞쪽에 出자 모양 셋, 뒤쪽에 사슴뿔 모양 둘입니다. 그다음 세움 장식이 관테와 만나는 자리의 금속 두께를 보십시오. 판이지 막대가 아닙니다. 그 얇기를 한 번 보고 나면 「쓰고 다니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문장이 연구자의 조심스러움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사실이 됩니다.
이어서 볼 곳
신라가 속한 세기는 삼국시대 개관에, 이 무덤들이 만들어진 시기 바로 뒤의 왕은 선덕여왕을 다룬 글에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신라 금관은 몇 점이 발견됐나요?
경주 시내 고분에서 지금까지 여섯 점이 출토됐습니다. 백과사전은 발굴이 더 이루어지면 그보다 많아질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덧붙입니다.
왕비 무덤에서 나왔다는 점이 왜 중요한가요?
황남대총은 쌍분이라 왕과 왕비를 직접 비교할 수 있습니다. 북분은 「婦人帶」 명문의 금제 허리띠 때문에 여성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금관이 나왔고, 남분인 왕의 무덤에서는 오히려 금동관이 나왔습니다.
나뭇가지와 사슴뿔 모양은 무슨 뜻인가요?
천상과 지상을 잇는 매개체로서의 나무와 사슴을 상징화한 것으로 읽힙니다. 그 기원은 북방 유목민족 샤먼이 쓰던 관에서 찾아지므로, 신라 바깥에서 들어온 요소로 설명됩니다.
실제로 쓸 수 있는 물건이었나요?
실용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러 겹의 얇은 금판을 오려 만들어서 머리에 쓰고 활동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백과사전은 적습니다. 이는 유물에 대한 판독이지 기록으로 확인된 사실은 아닙니다.
어디서 볼 수 있나요?
국가유산 기록은 소재지를 서울 용산구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적습니다. 다른 신라 금관들은 국립경주박물관이 관리합니다. 이 글은 특정한 날에 무엇이 전시되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진열은 교체되므로 유물 하나를 보러 가신다면 박물관에 먼저 확인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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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확인일:
공식 출처
- 사실 확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황남대총 북분 금관(1978년 국보 지정,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의 신라시대 무덤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금관, 경주 시내 고분에서 지금까지 금관 6점 출토, 금관이 나온 무덤은 대체로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경 조성, 이 시기 신라왕은 눌지·자비·소지 마립간과 지증왕 등 4명이므로 출토된 금관 수가 더 많은 것은 금관이 왕뿐 아니라 왕비나 가족 등에게도 쓰였기 때문으로 추측, 북분은 婦人帶 명문의 금제 허리띠로 여성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남분인 왕의 무덤에서는 오히려 금동관이 발견, 금령총은 15세를 전후한 아이의 무덤인데도 화려한 금관 출토, 신라의 관은 재질에 따라 금관·금동관·은관·동관으로 나뉘며 은관은 초기에 동관은 말기에만 일부 나타남, 관테를 원형으로 돌리고 그 위에 나뭇가지 모양과 사슴뿔 모양 장식을 덧붙여 세우는 것이 신라관의 특징이고 이 장식들은 천상과 지상을 잇는 매개체로서의 나무와 사슴을 상징화한 것으로 그 기원은 북방 유목민족 샤먼의 관에서 찾을 수 있는 외래적 요소, 태아를 상징하는 굽은 옥과 열매를 상징하는 달개가 달려 매우 화려함, 여러 겹의 얇은 금판을 오려 만들었기 때문에 실제로 머리에 쓰고 활동하기에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임, 황남대총은 현재 확인된 고신라 무덤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왕과 왕비의 무덤이 잇대어진 쌍분이며 길이는 120여 m, 왕의 무덤에서는 금동판을 오려 만든 관 5점이 출토되고 조금 늦은 시기의 왕비 무덤에서는 주검의 머리 부분에 씌워진 원형 그대로 금관이 출토, 왕비의 금관은 지금까지 출토된 出자 모양 세움 장식 금관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것, 금관 높이 27.5cm 수하식 길이 13cm∼30.3cm)
- 사실 확인: 국가유산포털 — 국보 황남대총 북분 금관(皇南大塚 北墳 金冠). 소재지를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기록
- 사실 확인: 국가유산청 공개 목록, 국보 중 이름에 「금관」이 들어가는 5건 — 금관총 금관과 천마총 금관은 국립경주박물관,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은 삼성문화재단, 황남대총 북분 금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