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저녁에 가기 좋은 유일한 궁궐이다. 다른 궁이 오후에 닫는 동안 21시까지 열고, 도심 한복판 지하철 출구 바로 앞에 있다.
언어

장소 정보
-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 가까운 역
- 시청역 (1·2호선) (출구 2) · 도보 2분, 광화문역 (5호선) (출구 6·2) · 도보 10분
- 영업시간
- 09:00–21:00 (입장 마감 20:00)
- 휴무일
- 매주 월요일 (공휴일이면 개관하고 다음 평일에 대신 휴관)
- 입장료
- ₩1,000
- 운영
- 궁능유적본부
요금
| 대인(내국인 만 25~64세 · 외국인 만 19~64세) | ₩1,000한복 착용자는 무료. |
|---|---|
| 단체(10인 이상 단체) | ₩800 |
| 입장료(내국인 만 24세 이하 및 만 65세 이상 (신분증 지참)) | 무료 |
| 입장료(외국인 만 18세 이하 및 만 65세 이상) | 무료 |
출처: 궁능유적본부 — 관람요금 ·
역사
덕수궁은 애초에 궁궐로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월산대군의 집이었고, 임진왜란 피난에서 돌아온 선조가 머물 궁궐이 마땅치 않아 이곳을 임시 궁궐(정릉동 행궁)로 삼으면서 왕실의 거처가 되었습니다. 이후 광해군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며 이 자리에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다시 궁궐로 쓰인 것은 삼백 년 뒤, 러시아 공사관에 있던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입니다. 1907년 고종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물러난 임금의 장수를 비는 뜻으로 '덕수(德壽)'라는 이름이 올려졌고 그것이 그대로 궁궐 이름이 되었습니다.
16세기
왕자의 집
궁궐이 아니라 월산대군의 사저로 시작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임시 궁궐
선조가 쓸 만한 궁궐이 없는 도성으로 돌아와 이곳에 머뭅니다.
광해군 대
경운궁으로 명명
조정이 창덕궁으로 옮겨가고 이 자리에 궁호가 붙습니다.
19세기 말
다시 궁궐로
러시아 공사관에 있던 고종이 이곳으로 옮겨 오며 궁궐로 되돌아옵니다.
1907년
덕수궁으로 개칭
고종이 물러나고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기며, 물러난 임금의 장수를 비는 이름이 붙습니다.
1963년
사적 지정
1월 18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볼거리

대한문
대한문(大漢門)은 덕수궁의 정문이다. 원래 경운궁의 정문은 남쪽에 있었던 인화문(仁化門)이었으나, 동문인 대안문(大安門) 주변이 환구단을 비롯하여 새로운 도심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정문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지금의 이름은 1906년(광무 10) 문을 수리하면서 바꾸게 되었다. 원래 대한문은 약 33m 앞에 있었으나 1970년대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궁능유적본부 (royal.khs.go.kr, KOGL Type 1)

중화문
중화문(中和門)은 1902년에 건립된 중화전의 정문으로 1904년 덕수궁 대화재로 소실된 후 새로 만들어 세운 것이다. 본래 중화문 좌우에 행각이 있었으나 현재는 동쪽에 일부만 남아 있다.
궁능유적본부 (royal.khs.go.kr, KOGL Typ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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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전
중화전(中和殿)은 덕수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중화전으로 오르는 계단 답도에는 다른 정전의 답도와 다르게 봉황이 아닌 용 두 마리가 새겨져 있다. 이는 대한제국 선포 후에 지어진 건물로 황제를 상징하는 용을 장식한 것이다. 중화전 마당에는 조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문무백관의 서 있는 위치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궁능유적본부 (royal.khs.go.kr, KOGL Type 1) · Seoul Tourism Organization Archive (Seoul Tourism Archive, KOGL Type 1)

준명당
준명당(浚眀堂)은 즉조당과 복도로 연결된 건물이다. 이곳은 즉조당과 함께 1904년(광무 8) 대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음 해에 복원하였다. 1916년에는 고종의 딸 덕혜옹주의 교육을 위해 유치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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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조당
즉조당(卽阼堂)은 석어당과 함께 덕수궁의 모태가 되는 건물로, 즉조의 뜻은 왕의 즉위라는 뜻이다. 이곳에서 15대 광해군과 16대 인조가 왕위에 올랐고, 1897년 대한제국 이후에는 정전으로 사용하였다. 이때 이름을 태극전, 중화전으로 불렀다가 1902년(광무 6) 중화전이 세워지면서 다시 즉조당으로 불렸다. 이후에는 고종의 후궁인 황귀비 엄씨가 생활하다가 1911년에 세상을 떠난 곳이다.
궁능유적본부 (royal.khs.go.kr, KOGL Type 1)

석어당
석어당(昔御堂)은 즉조당과 함께 덕수궁의 모태가 되는 건물로 임진왜란 때 선조가 임시로 거처했던 곳이다. 인조는 경운궁의 전각 대부분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으나 석어당과 즉조당은 보존하였다. 석어당은 덕수궁에 있는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2층 건물이자 단청을 하지 않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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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홍전
덕홍전(德弘殿)은 원래 고종의 황후인 명성황후의 혼전(왕과 왕비의 신주를 종묘로 모시기 전까지 임시로 신주를 모시는 건물)인 경효전이 있었던 곳이었다. 이후 고종은 고위 관료와 외교 사절 등 빈객을 접대하기 위한 접견실로 사용하였다. 내부는 천장의 샹들리에와 봉황문양의 단청, 오얏문양 등으로 화려하게 꾸몄다.
궁능유적본부 (royal.khs.go.kr, KOGL Type 1)

함녕전
함녕전(咸寧殿)은 1897년 고종의 환궁과 함께 지어진 황제의 침전이다. 1904년(광무 8) 함녕전 온돌 수리공사 중 일어난 화재로 소실되어 이듬해 다시 지었다. 고종은 이곳에서 생활하다가 1919년에 세상을 떠났다. 함녕전 뒤편에는 계단식 정원으로 꾸며 아름다운 장식을 한 굴뚝들을 설치하였다. 함녕전의 정문인 광명문은 2018년 현재의 자리로 다시 옮겼다.
궁능유적본부 (royal.khs.go.kr, KOGL Type 1)

정관헌
정관헌(靜觀軒)은『고종실록』에 의하면 조선 역대 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임시로 봉안했던 장소로 사용하였다. 정관헌은 동서양의 양식을 모두 갖춘 건물인데 기단 위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인조석 기둥을 둘러서 내부 공간을 만들었고, 바깥에는 동·남·서 세 방향에 기둥을 세운 포치가 있다. 난간에는 사슴, 소나무, 당초, 박쥐 등의 전통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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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전
석조전(石造殿)은 고종이 침전 겸 편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서양식 석조건물이다. 석조전은 서양의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건물의 앞과 동서 양면에 발코니가 설치된 것이 특징이다. 1910년에 준공된 후 고종은 고관대신과 외국 사절을 만나기 위한 접견실로 사용하였다. 현재는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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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전 서관
석조전 서관(石造殿 西館,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은 1936년 8월 기공하여 1938년 6월에 준공하였으며, 이왕가 미술관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궁능유적본부 (royal.khs.go.kr, KOGL Type 1)

돈덕전
돈덕전(惇德殿)은 1902년(광무 6)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칭경 예식을 위해 지은 건물로, 돈덕은 덕이 도탑다는 뜻이다. 벽돌로 지었고 화려한 유럽풍 외관을 지녔다. 1층은 황제를 뵙는 폐현실, 2층은 황제의 침실이 있었으며, 각국 외교사절의 폐현 및 연회장, 국빈급 외국인의 숙소로 사용하였다. 1907년 순종은 이곳에서 황제 즉위식을 가졌다. 1919년 고종이 세상을 떠난 후 방치되었다가 1930년대에 없어진 것으로 보이며, 궁능유적본부가 2023년에 재건하였다.
궁능유적본부 (royal.khs.go.kr, KOGL Type 1)

중명전
중명전(重眀殿)은 처음 1897년 황실 도서관으로 지어진 후 수옥헌(漱玉軒)이라고 불렸다. 수옥헌이 중명전으로 불리게 된 것은 1906년 이후로 보여진다. 1905년(광무 9) 을사늑약이 체결된 비운의 장소이기도 하며, 일제강점기 이후 민간에서 활용하다가, 2009년에 복원공사하여 2010년에 전시관으로 개관하였다.
궁능유적본부 (royal.khs.go.kr, KOGL Type 1)
대한문 선택됨
관람 코스

사진 명소
중화전 — 뒤로 스카이라인촬영 적기 · 늦은 오후
지붕선 바로 뒤에 유리 빌딩이 서는 유일한 궁궐입니다. 잘라내지 말고 대비를 살리세요.
석조전 — 열주에서촬영 적기 · 해가 진 뒤
석재는 목재보다 조명을 훨씬 잘 받습니다. 야간 개방이 이 건물에 유리한 이유입니다.
대한문 — 길 건너에서촬영 적기 · 아무 때나
시청을 배경에 둔 대한문 한 컷이면 덕수궁이 어떤 곳인지 다 설명됩니다.
중화전 — 뒤로 스카이라인 선택됨
편의시설과 접근성
휠체어와 유아차를 무료로 대여하고 단차 없는 동선을 안내합니다. 안내소·매표소·음성안내기 대여·물품보관함·수유실·화장실·응급처치소·휠체어리프트·자동심장충격기(AED)가 있고, 주차장은 유료로 운영됩니다.
권역이 작고 대체로 평탄해서, 서울의 궁궐 중 유아차나 휠체어로 다니기 가장 수월합니다.
다른 장소와 묶여 있는 것
입장권을 함께 쓴다
궁궐 통합관람권 6,000원으로 4대궁과 종묘를 함께 볼 수 있다. 구매일로부터 6개월 동안 각 궁 1회씩 쓰고, 4대궁과 종묘 매표소에서 판다. 창덕궁 후원은 포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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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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