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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셋째 아들이 어떻게 왕이 되었는지, 태종이 그를 고르며 남긴 한 문장, 그리고 재위 32년이 남긴 것. 광화문 동상 말고 세종을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곳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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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여주 영릉의 세종대왕 동상, 넓은 마당 끝 기단 위의 금빛 좌상

광화문 광장에 앉아 있는 금빛 동상이 세종입니다. 한국 지폐에도, 서울의 대로 이름에도 그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원래 왕이 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세종은 조선의 제4대 왕이고 재위 기간은 1418년부터 1450년까지입니다. 32년입니다. 이 글은 그 32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가 어떻게 그 자리에 앉게 되었는지를 다룹니다.

한눈에 보기

  • 재위 1418–1450

    조선의 제4대 왕입니다. 1418년 6월 왕세자에 책봉되었다가 8월에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했습니다.

  • 셋째 아들이었습니다

    태종에게는 양녕·효령·충녕 세 대군이 있었고, 세종은 그중 셋째인 충녕대군이었습니다.

  • 가장 빛나는 업적

    백과사전은 훈민정음 창제를 세종대의 가장 빛나는 업적으로 꼽습니다.

  • 능은 여주 영릉

    세종의 능호는 영릉이고 여주시에 있습니다.

셋째 아들이 왕이 된 과정

세종의 이름은 이도(李祹), 태종의 셋째 아들이고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입니다. 1408년 충녕군에 봉해지고 1412년 충녕대군에 진봉되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태종에게는 왕후 민씨 소생으로 양녕·효령·충녕 세 대군이 있었고, 양녕대군에게도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미 세자로 있던 양녕을 폐하고 새로 세자를 세우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세자 폐립에 관해 의론이 분분했습니다.

그런데 태종의 마음은 이미 셋째에게 기울어 있었습니다. 1418년 6월, 태종은 "충녕대군은 천성이 총민하고, 또 학문에 독실하며 정치하는 방법 등도 잘 안다"고 하여, 택현(擇賢)의 명분을 주어 세자로 책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택현은 '어진 이를 고른다'는 뜻입니다. 장자 계승이 원칙인 체제에서 순서가 아니라 자질로 후계자를 고르는 명분을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했습니다.

32년 동안 무엇을 했나

백과사전은 세종대를 우리 민족사상 가장 빛나는 시기로 평가하고, 그 근거를 목록으로 제시합니다.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가 양성되었고,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사업이 이루어졌습니다. 또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기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공법의 제정,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해 민족국가의 기틀이 공고해졌습니다.

그중 훈민정음 창제가 가장 빛나는 업적으로 꼽힙니다. 그 이야기는 한글의 창제에서 따로 다룹니다.

통치 방식도 도중에 바뀌었습니다. 세종 18년에 육조직계제가 의정부서사제로 바뀌면서 정치체제상의 변혁이 있었고, 이듬해에는 세자로 하여금 서무를 재결하도록 했습니다. 그 뒤로 언관과 언론에 대한 왕의 태도도 훨씬 자유롭고 부드러워져서 이들에 대한 탄압이나 징계는 거의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즉 그는 재위 후반에 권한을 나누는 쪽으로 움직였습니다. 강력한 왕권을 물려받아 그것을 유지한 채로도 가능했던 선택이라는 점이 이 대목의 핵심입니다.

세종을 만날 수 있는 곳

광화문 광장의 동상은 기념물이지, 그가 있던 자리는 아닙니다.

경복궁은 그가 왕으로서 지낸 궁궐입니다. 조선의 정궁이었고, 세종대의 일들이 여기에서 결정되었습니다.

여주 영릉은 세종이 묻힌 곳입니다. 세종의 능호는 영릉이고 여주시에 있습니다. 이곳에는 세종대왕 역사문화관도 함께 있어, 동상과 능과 전시를 한 번에 볼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당일로 다녀오는 거리입니다.

같은 자리에 효종의 영릉도 있습니다. 한자는 다르지만 한글 표기가 같아 헷갈리기 쉬운 두 능이 한 권역에 있습니다.

세종과 이어지는 곳

자주 묻는 질문

세종은 언제 왕이었나요?

조선의 제4대 왕으로 1418년부터 1450년까지 재위했습니다. 1418년 6월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다가 같은 해 8월 태종의 양위를 받아 즉위했습니다.

세종은 장남이 아니었나요?

아닙니다. 태종의 셋째 아들 충녕대군이었습니다. 이미 세자였던 양녕대군을 폐하는 문제로 의론이 분분했지만, 태종이 '충녕대군은 천성이 총민하고 학문에 독실하며 정치하는 방법도 잘 안다'며 택현의 명분으로 세자로 삼았습니다.

세종의 가장 큰 업적은 무엇인가요?

백과사전은 훈민정음 창제를 가장 빛나는 업적으로 꼽습니다. 그 밖에 집현전을 통한 인재 양성, 의례·제도 정비, 방대한 편찬사업, 농업과 과학기술, 공법 제정, 국토 확장 등이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종의 무덤은 어디에 있나요?

능호는 영릉이고 경기도 여주시에 있습니다. 같은 권역에 효종의 영릉도 있습니다.

광화문 세종대왕상 말고 볼 곳이 있나요?

경복궁이 그가 왕으로 지낸 궁궐이고, 여주 영릉이 그가 묻힌 곳입니다. 영릉에는 세종대왕 역사문화관이 함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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